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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換亂 트라우마'가 광구 사냥 걸림돌 석유ㆍ가스광구 저가매물 봇물...경험ㆍ협상력 부족 한계

하진수 기자공개 2009-03-17 09:21:07

[편집자주]

글로벌 유동성 부족을 계기로 해외 석유ㆍ가스광구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해외진출로 '자원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당장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공기업들이 여느 때보다 인수합병(M&A)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M&A시장 역시 OB맥주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먹거리가 없는 상황이어서 국내·외IB들도 관련 딜의 자문계약을 따내려고 혈안이 됐다. 문제는 해외 M&A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선 노무현 정권에서 그린필드 방식만을 고집해왔던 경험 부족이 문제시되고 있다. 쓸만한 '딜'을 찾아내기 힘든데다 막대한 인수금융까지 일으키면서 수익성도 확보해야 한다. 중국ㆍ인도 등과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이겨내야 한다. 자원강국의 꿈을 이루려면 어떤 과제들을 해결해야 될지 진단해본다.

이 기사는 2009년 03월 17일 09: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원자재 블랙홀인 중국은 일찌감치 해외자원개발의 필요성을 인지해 '유전쇼핑'에 앞장서 왔다. 국영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유한공사(CNPC)는 지난 2005년 42억달러란 천문학적인 금액에 카자흐스탄 3위 석유업체 페트로카자흐스탄(PetroKazakhstanㆍ매장량 5억5000만배럴)을 사들였다.

이듬해 7월에는 53억달러를 주고 세계 6위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Rosneft Oil)의 지분 7.58%를 매입했다. 오일 메이저들은 중국의 이런 '풀베팅'을 비웃었지만 당사자인 중국은 당장의 경제성보다 미래의 석유확보라는 정치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과감성에 있어 인도도 만만치 않다. 국영 석유회사인 ONGC(Oil & Natural Gas)는 작년 말 25억달러를 주고 영국 가스탐사기업 임페리얼에너지(Imperial Energy)를 인수했다.

2006년에도 나이지리아 광구 개발권 인수 등에 무려 15억달러 이상을 썼다. ONGC는 현재 아시아 에너지기업 가운데 실적기준으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 위 순위인 3위도 인도 최대 화섬기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다.

아시아 경쟁국들이 이처럼 일찌감치 해외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해온 반면 한국은 그간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최근 3년간 해외자원과 관련해 유일한 M&A 사례가 최근 맺은 석유공사의 페트로테크 인수계약 뿐이다.

오히려 한국은 자원개발 시장에서 '바이어'가 아니라 '셀러'로 움직여왔다. 80년대초부터 해외석유개발에 나섰던 공기업과 민간기업은 외환위기 칼바람 속에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6개의 광구를 매각했다. 당장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다보니 근시안적인 대응으로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심지어 외환위기 이전 활발히 이뤄졌던 해외진출 시도들이 성과를 못 내면서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마저 생겨났다.

해외자원개발 투자규모는 1998년 8억달러에서 2002년에는 5억달러로 축소됐고 대규모 M&A 투자보다는 소규모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한국이 실패의 씁쓸함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중국, 인도, 일본 등 경쟁국들은 매우 공격적인 M&A에 나섰다. 최근 4년간 한국과 중국의 국영정유업체들은 해외자원개발에 각각 148억달러와 1476달러를 투입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중국이 한국에 비해 10배 가까운 투자를 단행한 셈이다. 같은 기간 인도와 일본도 한국에 비해 1.6배, 2.4배 규모의 투자를 기록했다.

최근 한국의 투자패턴에 변화가 일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 ▲자원 확보 필요성 증대 ▲해외광구 급매물 출현 등이 주요 원인이 됐다.

당장 정부는 올해 해외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금으로 전년대비 20%이상 늘어난 70억달러를 책정했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이를 석유ㆍ가스 분야에 52억달러, 유연탄 등 6대 광물 분야에 18억달러를 투자한다는 세부방침까지 세웠다.

지경부 산하 공기업들은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하고자 민간보다 높은 신용도를 활용, 차입과 해외채 발행 등을 통해 1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개별 공기업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석유공사는 페트로테크 외에도 대형화 방안에 발맞춰 향후에도 해외 M&A를 꾸준히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가스공사는 최근 메릴린치를 인수 자문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M&A 매물들을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넘치는 의욕만으로 해외진출을 도모하기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산재해 있다.

정부의 야심찬 자금조달 계획에도 불구, 글로벌 금융위기와 원화약세에 따른 인수금융 조달의 어려움은 향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매물들의 값이 싸졌다고 해도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해 한국이 누릴 인하폭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세제지원 취약, 해외 M&A에 필요한 정보 및 전문 인력 부족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여전히 '셀러'가 우위인 에너지 인수합병 시장에서 매각자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ㆍ변경 등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1월 나이지리아 정부가 석유공사와 한국전력 등으로 구성된 한국컨소시엄과 맺었던 심해광구 탐사계약을 일방적으로 백지화시켜 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쟁관계였던 인도의 ONGC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다보니 무려 2주간 인수여부 결정시한을 연장한 후 인수자를 바꿔버린 경우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험이 없는 한국이 자원 확보라는 총성 없는 전쟁에서 막강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노련한 매각자를 설득하려면 전문적인 협상전략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경쟁국에 비해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늦어 번번히 고배를 마시는 현 시스템을 바꾸던지 그럴 수 없다면 매물자체를 선별하는 선구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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