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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의 큰 그림 고 조수호 회장 일가의 경영능력 입증할 시기

박준식 기자공개 2009-12-03 08:57:13

이 기사는 2009년 12월 03일 08: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담상담상 난 흰머리가 눈에 띈다. 염색은 일부러 안한 듯 하지만 잘 관리된 스타일이다.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스스로 "미망인 오너의 한 명으로 분류되긴 싫어 독해졌다"고 말했다.

1962년생. 최은영 한진해운그룹 회장은 내년이면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다. 남자들의 판인 해운업이 처음엔 너무 부담이 됐단다. 20년 넘게 살림에만 신경 썼던 주부가 갑작스럽게 반려를 떠나보낸 뒤 그 해 자산규모 6조원의 한국 대표 선사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힘에 부쳐 "차라리 화장품이나 패션 사업이라면 잘할 텐데"라며 푸념도 늘어놨다고 한다. 그러자 당시에 스무 살을 갓 넘겼던 큰 딸이 "하늘이 엄마 인생을 그렇게 두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지금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준비하고 나서겠다"던 최 회장은 경영을 시작한지 2년여 만인 지난 1일 그룹의 총수로 전면에 등장했다. 스스로는 "이미 2년 전부터 한진해운은 최은영 체제였다"고 강조하면서 "남편인 조수호 전 회장이 유명을 달리한 후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서도 세(勢)를 과시하는 성격이 아니라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1년 전에도 그는 언론을 만났지만 이 날은 좀 달랐다. 한진해운은 같은 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계열 그룹의 총수로 최 회장을 공식 선임했고, 본인은 간담회를 자청해 언론을 직대했다. 2년 간 고민한 끝에 지주사 전환을 결정했기에 이젠 책임경영 측면에서라도 총수 역할에 거리낌이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점심식사를 함께 한 간담회였지만 본인은 한 시간 반 동안 답변에만 주력하며 '회장님'으로서 시원시원하게 얘기했다. "누가 써준 대로 읽는 건 내 타입이 아니다"며 사회를 보던 홍보팀장을 쩔쩔매게 했다. 경영권 분쟁과 계열 분리 질문이 쇄도했지만 예상했다는 듯 대답에도 거침이 없었다.

우선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회장과 벌이는 경영권 분쟁은 없다"고 일축했다. "조 회장이 해운그룹의 독립경영을 인정하고 추후 계열분리에 관한 큰 그림에도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회장이 집안의 장남이라 해운업을 걱정해 노파심에서 도우려고 지분을 유지하는 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현안은 "도탄에 빠진 해운업의 체력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이유로 부산 신항만 터미널 지분 등 자산을 좀 더 팔아 당분간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최근 600억원 규모 자사주를 판 것도 경영권 방어 때문이 아니라 재무약정에 따른 것이라 해명했다. 해운업은 내년 말에나 좋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최 회장은 당장 계열분리를 하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 "항공과 해운을 둘 다 가진 그룹은 세계에서 한진 밖에 없다"며 "지금은 위기 상황이라 신경을 못 쓰지만 실적이 흑자로 돌아서면 계열분리도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 장담했다. 경기 순환에 민감한 두 사업을 동시에 가져가는 건 사업적으로도 불리하다고 얘기했다.

두 딸의 경영참여를 조심스레 묻자 "올해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큰 딸에게 이미 물었고, 고민하고 있다"며 "우선은 토요타 같은 다른 글로벌 기업 물류 사업부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그가 언급했듯 당장의 경영위기 극복은 물론 추후의 한진그룹 계열분리나 오너 일가의 경영승계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가족끼리의 분쟁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누군가 '조양호 회장이 해운 지분을 팔려고 했다더라'고 전하자 반색하며 "들은 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도 액션을 취해야지"라고 관심을 보였다. 사실 조양호 회장이 해운그룹을 완전히 넘기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최 회장에게 주가가 떨어진 지금만한 호기가 없다.

최은영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큰 그림'에 동의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분리 시기다. 계열사를 통해 한진해운 지분을 늘린 조 회장도 손해를 보지 않고 지분을 정리하려면 주가가 지금보단 두 배는 더 올라야 한다.

이 시점에서 최 회장의 역할이 선명해진다. 그는 "내년에도 흑자를 장담하진 못한다"고 했지만 '큰 그림'을 위해선 먼저 위기를 극복해 경영능력부터 증명할 필요가 있다. 누가 물려줘서가 아니라 주주들에게 능력을 검증받아야 자리를 지킬 명분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회장은 이 날 총수가 되기 위해 주어졌던 특별한 인큐베이팅 기간이 끝났음을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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