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0년 05월 24일 09: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용평가사의 평가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지 1년여가 지났다. 지난해 3월 신용정보법 개정안 통과로 유가증권에 한정했던 평가 대상이 금융투자상품 전체로 확대됐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기업·금융회사뿐 아니라 국가·지자체의 신용도를 측정할 근거 또한 갖게 됐다.
하지만 국내 신평 업무는 여전히 회사채·기업어음·ABS 등 크레딧물의 상환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머물러 있다. 신평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평가 대상 확대의 멍석을 깔아줬지만 적절한 액션을 취하기에는 역량도 시장 현실도 녹록치 않다.
가장 큰 한계는 불신에 있다. 신평사와 시장 참가자간 신뢰의 부재는 국내 크레딧 마켓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융시장은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사고 판다. 위험은 투자의 가치이자 흥망을 판가름할 열쇠다. 신용평가사의 역할은 위험의 척도를 보여주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신뢰는 신평사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장의 믿음은 신평업계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친다. 최근 펀드평가제 도입, 지자체 평가 등 신평사들의 업무 범위 확대 노력에도 증권·자산운용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따지고 들면 신평업계의 역량 부족에서 첫 번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발행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평사의 한계와 등급 버블에 대한 지적은 식상한 화두로 인식될 만큼 빈번하게 제기돼 왔다.
하지만 신평업계의 잘못으로만 몰아가기에는 국내 크레딧 시장의 인식의 오류 또한 선명하게 눈에 띈다. 낡은 것에 대한 안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과한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신평업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펀드평가제의 경우를 보자. 몇몇 신평사들은 지난해부터 운용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설명회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운용업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기존 펀드평가사의 가치 측정과 신평사 평정 계획에 특별한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펀드에 편입하는 자산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자체적으로도 등급 산정이 가능하다는 자신감도 드러낸다.
외국 사례를 수집해 브리핑에 나선 신평사의 뒤쳐진 현실감각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신평사 조차 준비 부족을 인정하는 것을 볼 때 운용업계의 부정적 입장 또한 충분히 수긍할 만 하다.
다소 뻔한 명제지만 모든 시작은 시행착오에서 출발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국내 크레딧 시장의 발전은 늦춰지거나 멀어진다.
신뢰는 시장참가자 모두의 능동적 참여 속에 발전적 비판을 거름 삼아 싹튼다. 미약한 시작이 값진 결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당장의 효율성을 논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생산의 주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먼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금융시장에서도 여유를 가져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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