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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건 한국은행, 미덥지 않다

강종구 기자공개 2010-07-09 19:38:37

이 기사는 2010년 07월 09일 19: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금통위가 끝난 직후 자본시장에 잘 알려진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 13명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금리인상 적기, 지났나요? 지금인가요? 아직 오지 않았나요?"

답을 보내준 9명은 이구동성 "지났다"고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상이 시작됐어야 한다는 걸 모두 아는데, 왜 그런 엉터리 질문을 하느냐고 따지는 이도 있었고, 연초부터 시작해서 이미 100bp 정도는 올렸어야 했다는 이도 있었다.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 한국은행이 17개월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까지 내렸던 저금리의 정상화, 즉 통화정책의 출구전략이 시작된 것이다.

◇ 많이 늦었지만…'탈출'은 시작됐다

국내 경제상황만 보면 기준금리가 너무 낮고 금리인상이 너무 늦었다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중환자실에 들어갔던 경제가 몸을 추스린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이미 걷기 시작했고 하반기에는 대부분의 체력을 회복했다. 올 들어서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 발생하는 국지적인 위기를 크게 괘념치 않아도 될 정도로 정상을 찾았다.

그런데도 기준금리는 금융위기 이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사상 최저 수준인 2%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환자는 회복이 됐는데 인공호흡기를 떼지 않은 셈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행을 싸잡아 폄하하기도 어렵다. 사실 한은 집행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출구전략을 준비했다. 아마 해가 바뀌기 전에 한번쯤은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이 전총재는 지난해 마지막 금통위에서 비장한 각오로 금리 정상화를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필요하다면 대통령과 맞서서라도 금리를 올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금통위를 둘러싼 역학관계는 복잡했다. 한은 집행부도, 총재조차도 통제할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통화정책이 경기를 살리는 데에 당분간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금리를 꼼짝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통화정책은 지표로써 모든 것을 확인하고 행동에 옮기면 늦다. 수평선 뒤 쪽에 있을 때(보이지 않지만 확신이 들때) 그것(금리)을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경기나 물가 상황에 맞추어 (금리인상의) 타이밍을 잡는 고민을 계속해 나가겠다""우리는 문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적당한 시기에 문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

시장의 실망은 대단히 컸다. 연초를 금리인상의 적기로 생각했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공수표를 날린 한국은행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직 정부 관료가 곧바로 금통위원에 임명됐고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던 열석발언권이 부활됐다.

이 모든 것을 시장은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국은행과 시장 사이에 '벽'이 세워졌다.

◇ 95%의 전망이 왜 빗나갔을까

더벨의 사전 설문조사에서 95%의 전문가가 7월 금리동결을 전망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틀린 것이다. 경기와 물가를 보는 시각은 한국은행이나 시장의 전문가들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왜 틀린 것일까.

우선 한국은행을 지나치게 얕잡아 봤다. 한국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금리를 못 올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5~6월 차근차근 이루어진 사전 정지작업에도 불구하고 '설마 곧바로 올리겠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김중수 총재의 기자간담회 설명에도 문제가 있다. 명백한 수순을 밟고 있으면서도 뒤로 물러나는 듯한 인상을 자주 풍긴다. 5월 금통위를 예로 들어보자. '당분간'이란 표현을 삭제한 것이 금리인상을 시사한 것이냐고 묻자, 총재는 확대해석을 극구 말린다.

"우리 사회에는 예측을 하고 한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방향으로 가는 게 건강한 사회냐 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중략) 당분간'을 뺀다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뺄 것이냐 하는 것인데 상당히 많은 변수는 회복 추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액션을 취하기에는 어렵다. 다운사이드 리스크가 있다고 이해해 달라."

'당분간'이란 표현은 처음 성명서를 작성할 때는 들어있다가 금통위가 끝난 이후 문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견돼 총재 자신의 결정으로 삭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의 삭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심사숙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당분간'의 삭제는 별다른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 한 조만간 금융완화를 거두어야 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행 뿐 아니라 세계의 중앙은행이라고 하는 연준에 대해서도 통하는 해석이다. 더벨이 5월 BOK Watch에서 '당분간'의 삭제는 금리동결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소극적인 의미인 것 같다고 해석하면서도 7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다.

6월의 통화정책 방향에서는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는 문구가 '물가안정 기조위에'로 수정됐다. 긴축을 향한 또 한번의 중요한 스텝을 밟은 것인데 김 총재는 김을 뺀다.

통화정책면에서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듣고 싶은데, 부산 G20커뮤니케에서 그런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자연스럽게 들어갔다"는 것이다. G20커뮤니케는 재정차관들이 회의를 한 결과물이다. 그럼 물가안정이란 표현을 넣은 것은 한국은행의 주도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7월 금리인상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 열린 G20회의에서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이 통화정책을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것은 한국의 금리인상을 이해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은 한국은행더러 금리인상에 나서라고 종용하지 않았던가.

그 뿐인가. 청와대와 정부(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물가상승을 우려하는 발언을 여러차례, 그것도 김중수 총재보다 더 강한 어조로 쏟아냈다. 김 총재 입장에서 보면 금리인상에 대해 정부와 G20의 동의를 모두 얻었다는 의미가 된다.

◇ 시동 걸린 출구전략이 미덥지 않은 이유

무려 17개월만에 금리를 올리면서도 한국은행은 경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금리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꼬리를 내릴 지 모른다는 생각을 시장이 하고 있다.

금리인상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재 기준금리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경제상황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금리를 어느 정도는 '수정'을 해야 뒷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이 3%대라고 하니 최소한 3%까지는 올려야 실질 기준금리가 겨우 제로가 된다. 그렇다면 25bp씩 올린다고 가정할 때 최소한 네 번은 인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김 총재는 저금리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단 한차례도 금융 완화의 폭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직 끝났다고 볼 수 없다며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7월 금리인상은 출구전략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통화정책의 방향을 노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향후 행보는 안갯속이다. 질서정연한 퇴각이 가능할 지 알 수 없다. 한은 총재가 어떤 것도 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매달 금통위에 일희일비해야 할 판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정책의 효과를 발휘하는데도, 시장이 가격을 발견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통화정책 기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과감하고 단호하게 출구전략을 실행한다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나감으로써 출구전략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2009년 9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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