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22일 07:54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가총액이 조 단위인 한 코스피 상장사 전 임원은 재직 당시 오너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자네는 주인 의식이 없어." 의아했던 그는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오너는 이렇게 답했다. "주인 의식이란 말이야 주인을 섬기는 의식이란 말일세. 자네는 나에 대한 주인 의식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이 에피소드는 한국 대기업 오너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엄연히 수십, 수백만명의 주주를 거느린 상장사지만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밸류에이션(시가총액)에 대해 아우성치는 외부 소리는 와닿지 않는다. 경영 현안의 시작과 끝엔 그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황에 이를 대입해 보면 어떨까. 올해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최대 과제로 꼽고 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 대비 가치가 바닥을 기는 국내 주식 시장을 개선시켜 보겠다는 움직임이다. 기업이 스스로 저평가된 이유를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해 밸류에이션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와 맞물려 적극적인 주주 환원책을 내놓는 상장사도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만 업계 시각은 사뭇 다르다. 자기주식 매입·소각, 배당 확대 같은 주주 정책이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하나같이 기업 내부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꼬집는다. 불투명한 지배 구조, 이에 파생된 경영진의 도덕성 결여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일반 주주가 배제되는 가장 큰 이유라는 설명이다.
한 상장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여러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무리 분석해도 결국 개인이 투자판을 좌우하다 보니 모든 투자 기법이 무색해지는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이사회를 통해 법인 운영 등을 통제하지 않는 현재의 기업 내부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0년대 아베노믹스 당시 꾸준히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여 온 일본 등과 비교할 때 한국의 거버넌스 개선 속도가 떨어진다는 견해다.
앞선 첫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회사의 주인인 나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너는 문제"라는 오너의 말은 나 혼자 두는 체스판을 연상케한다. 개인에서 시작해서 개인으로 끝나는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 이에 동조해 들러리로 전락한 이사회 등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진 그림이다.
단기적으론 시장 환원책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시발점은 기업 내부의 독립적이고 투명한 의사 결정 구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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