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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하는 가족신탁]고령화 시대 자산관리 핵심, 법안 개정 기대 '훈풍'①1년 상속 재산만 100조, 베이비부머 은퇴에 성장 탄력

황원지 기자공개 2024-06-18 07:55:54

[편집자주]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 되면서 가족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1년에 1조원이 넘는 속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신규 진출을 선언한 금융기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 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법안 개정이 이뤄지면 성장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벨은 국내 가족신탁 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법안 개정에 따른 방향성을 가늠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13일 08:17 theWM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은퇴와 상속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시화되면서 이들의 부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작업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상속 재산은 2022년 96조원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대에 이어 현재 50대가 은퇴를 시작하면 관련 시장도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관리(WM)업계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건 가족 내 자산관리 수단인 가족신탁이다. 가족신탁 중 하나인 유언대용신탁 시장이 지난해 말 3조원대로 성장하면서 증권사 뿐만 아니라 은행권에서도 예의주시 하고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신탁 전산화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고, 기업은행도 신상품으로 'IBK 내뜻대로 유언대용신탁’을 내놓았다.

수년째 묵혀뒀던 신탁법 개정도 주목할 지점이다. 신탁업계에서는 법적 제약을 시장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강조해 왔다. 21대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못했지만 인구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서는 개정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법안 개정에 앞서 생명보험청구권신탁 허용이 올해 하반기 중 예상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0년 전 신탁법에 성장 묶인 가족신탁시장

신탁(信託, Trust)은 믿고 맡긴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에게 내 자산을 관리, 처분할 수 있게 소유권을 넘기는 계약이다. 이를 가족 사이 자산관리에 활용하면 가족신탁이라 부른다. 부모(위탁자)가 신탁회사(수탁자)에 자산을 맡기고, 신탁회사가 이를 생전의 뜻대로 자식(수익자)에게 상속하는 유언대용신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탁 개념도

해외에서는 이미 가족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기업 오너가 자식들에게 분쟁없이 가업을 승계하고 싶을 때, 혹은 치매에 걸릴 것을 대비해 미리 자산을 맡기고 싶을 때, 상속에 자식의 결혼이나 출산 등 조건을 걸고 싶을 때 등 다양한 순간에 활용된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상속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은 전체 상속자산의 약 30%가 신탁을 통해 이뤄진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다. 신탁 전문가들은 가장 큰 걸림돌로 법적 제약을 꼽는다. 실제로 신탁 시장은 법 개정과 궤를 같이해 왔다. 국내 가족신탁 시장은 2013년 신탁법 전면개정 전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현재 규모가 가장 큰 유언대용신탁이나 수익자연속신탁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탁을 상속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았던 셈이다.

전면 개정 이후로도 폭발적인 성장은 없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포괄주의인 미국 등과는 달리 수탁가능재산에 열거주의를 택하고 있다.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지상권·전세권·부동산임차권·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그 밖의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저작권 등)까지 7개로 제한된다. 신탁의 가장 큰 장점인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셈이다.

손발이 묶여 있으니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간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에서 가족신탁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으로 인식돼 왔다. 삼성증권과 한화생명 등이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해 운영했짐나 수익성 저하로 사업을 접기도 했다. 올해 신한은행이 다시 뛰어들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특화 조직을 두고 있는 곳은 하나은행과 신영증권 정도였다.

◇시동 거는 신탁법 개정…생명보험청구권·가업승계신탁 ‘주목’

하지만 인구구조 고령화로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4대 시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3000억원이었다. 2조3000억원대였던 지난해 1분기에 비해 43% 넘게 늘었다. 2020년 말 잔고가 87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성장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신탁법 개정이 관련 산업 성장에 불을 붙일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에서는 ‘신탁업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신탁업계와 보험, 은행, 증권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신탁업과 관련한 규제를 풀기 위해 합의한 방안이다. 이를 기초로 지난해 말 국회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지난달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해당 법안도 자동 폐기된 상태다.

올 상반기 통과는 불가능해졌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의지가 강하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상속을 위한 제도 개선 압력이 커지고 있기에 통과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비록 이번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업계와 금융당국 모두 개정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가족신탁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열거주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금융당국은 포괄주의가 아닌 일부 신탁만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업계에서 가장 기대하는 건 생명보험청구권과 가업승계신탁 두 가지다. 먼저 시동을 거는 건 생명보험청구권 신탁이다. 개정안 통과와 별개로 시행령을 통해 하반기 중 허용될 예정이다.

가업승계신탁도 기대되는 분야다. 지금까지 의결권 제한으로 인해 어려웠던 중견, 중소기업 오너들의 상속과정에 신탁이 활용될 수 있다. 기업을 운영하는 초고액자산가(VVIP)를 노리는 WM업계에서도 신탁의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이외에도 채무권 취급이 허용되면 쉬워질 주택신탁과 치매를 대비한 후견신탁 시장도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오영표 신영증권 헤리티지솔루션본부장은 "신탁시장 성장을 위해서는 먼저 대중에게 신탁이 익숙해져야 하고, 둘째로 자산가들이 많이 활용해 시장에 자금이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중요한 건 법적 제약 해결"이라며 "제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상품이 허용되면 성장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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