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재무라인' 대폭 이동 왜? 밥캣 문제 해소 대거 승진·순환배치..계열사 리스크관리·사업강화 '초점'
김장환 기자공개 2011-12-28 12:00:52
이 기사는 2011년 12월 28일 12: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두산그룹이 최근 임원인사에서 계열사 재무라인에 대한 대규모 승진 및 순환배치를 단행,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산은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 단순 수시 인사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인사 대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나름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특히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 두산건설 등 그동안 밥캣 인수금융 문제와 직접 연결된 계열사들의 재무책임자(CFO)들이 대거 교체된 점이 눈길을 끈다. 시장에서는 내부적으로 '밥캣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된 것으로 판단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밥캣 리스크 해소 위해 뛰었던 장명호 CFO..이번엔 두산중공업 '소방수'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두산중공업으로 몸을 옮긴 장명호 재무관리부문장(CFO)이다. 장 CFO는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가 밥캣 인수금융 문제로 유동성 위기에 휩싸였을 당시 해당 자리에 올라 리스크 해소를 비교적 무난하게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07년 은행권에서 29억달러의 신디케이티드론을 받아 소형 건설장비업체인 밥캣을 인수했다. 하지만 인수 후 1년여만에 미국 주택경기 침체로 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차입금 관련 리스크가 확대됐다.
이후 2008년 8월 말,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엔진과 함께 총 10억달러를 밥캣에 추가 출자한다고 밝히면서 두산그룹 전체로 유동성 위기설이 확대됐다. 시장에 밥캣의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때 두산인프라코어 주가가 40% 이상 급락했을 정도다.
그해 10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당시 재무책임자였던 임경락 전무 대신 후임으로 장명호 CFO를 선임했다. 당시 장 CFO의 선임은 리스크 대응을 위한 쇄신차원에서 이뤄진 선택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최근 밥캣 리스크를 마침내 떨쳐버린 채무조정안 등 세부적인 자금 운용 스킴(scheme)을 완성시킨 배경에 장 CFO의 역할이 컸다. 지난 11월 두산인프라코어는 밥캣 인수자금 리파이낸싱(채무 재조정)을 통해 시장 불안을 해소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조정안은 자체 자금과 채권 발행을 통해 5억7000만달러를 갚아, 기존 22억9000만 달러(약 2조6000억원)의 차입금을 17억2000만 달러로 줄였다. 또 계약만기를 2012~2014년에서 3년이 늘어난 2015~2017년으로 연장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는 밥캣 리스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 장 CFO를 두산중공업으로 전면 배치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차입금 비중 확대 등으로 인한 재무리스크가 큰 상태다. 내년도 안정적 자금운용 방안 구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은 올 초까지만 해도 중동 정세 불안 및 일본 원전 사고 여파로 그룹 안팎에서 수세에 몰렸었다. 물론 최근 연이은 대형 수주로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고 나섰지만 아직까지는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내년도 상환해야 할 차입금 규모 등을 볼 때 재무적으로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있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그룹사 중에서 두산건설의 뒤를 이어 내년도 만기 도래 회사채를 가장 많이 쥐고 있는 계열사다. 내년 12월까지 상환해야 하는 회사채가 3800억원에 달한다. 두산건설은 4385억원 정도다.
여기에 두산중공업은 내년 3분기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외 금융권 원·외화 단기차입금도 1조9516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타 계열사에 비해 차입금 비중이 월등히 높은 축에 속하는 셈이다. 그만큼 내년도 안정적인 자금운용 계획 수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두산그룹이 장 CFO를 두산중공업에 전면 배치했다는 것도 두산인프라코어 위기를 성공적으로 진화했던 '소방수' 역할을 다시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두산건설 '토박이' 재무통 최종일 CFO..CEO로 전면 배치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움직임 중 하나는 최종일 전 지주부문 관리부문장이 두산건설 CEO로 몸을 옮겼다는 점이다. 두산그룹 계열사 중에서 최근 재무적으로 가장 부담을 느끼는 곳도, 또 그룹사 차원의 유동성 위기가 거론될 때마다 진원지로 지목되는 곳도 바로 두산건설이다.
두산건설은 내년에도 주요한 재무 관련 과제가 그 어떤 계열사보다도 많은 곳이다. 건설경기 침체와 미분양 여파로 지난 한해 시장의 우려를 계속해서 샀던 곳이자, 내년도 경기 전망도 그다지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산건설은 올해 5월 이후 그룹사 차원의 유상증자, 교환사채(EB),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활용한 5000억원 규모의 자본확충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면서 유동성 위기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다.
하지만 재무 구조는 여전히 불안한 편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분양률 개선됐지만 공사 미수금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수금은 일산 탄현 1680억원, 해운대 제니스는 2470억원에 달한다. 시행사에 대한 대여금도 1698억원, 439억원으로 늘어난 상태다.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소요 운전자본(매출채권+재고자산-매입채무) 해소도 시급하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운전자본이 3년 사이 3배이상 증가했다. 2008년 2817억원이었던 운전자본은 2009년 3148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말에는 9986억원으로 증가했다. 일산제니스 등 미분양 여파로 매출채권이 두 배 이상 증가한 영향이다.
이처럼 재무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에 정통한 재무통인 최 CEO를 전면에 배치했다. 최 CEO는 1981년 두산건설 전신인 동산토건으로 입사해 두산건설에서 CFO까지 역임했다. 한마디로 두산건설 토박이 인사인 셈이다.
최 CEO는 지난해 10월 두산건설 유동성 위기가 거론됐을 당시에는 모회사인 두산중공업 CFO를 맡아 전면에서 안정적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최 CEO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송해 시장의 우려를 안정시키는데 앞장섰다. CFO가 직접 해명자료를 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당시 최 CFO가 직접 대응 방안을 고안해낸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엔진, 김동철 CEO 선임..중국사업 강화 움직임
이외에 두산엔진 CEO로 김동철 전 글로넷BG장을 앉힌 배경에는 중국 사업 강화 움직임이 거론된다. 김 신임 CEO는 1980년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1992년부터 중국법인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중국통이다. 2009년부터 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장을 지냈고, 이후 지난해 글로넷BG장으로 몸을 옮겼다.
두산엔진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올해 수주량 기준, 두산엔진의 중국 비중은 35%에 달한다.
두산엔진은 지난 2006년 부품협업화 단지 내에 조성한 두산선기유한공사(지분율 100%)를 통해 중국 관련 사업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두산선기는 선박용 대형엔진에 소요되는 베드플레이트와 프레임박스 등을 연간 300블록(2만톤) 생산한다.
여기서 생산된 엔진부품은 자체 엔진사업부를 보유한 대련조선(DSIC)으로 공급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련조선을 통한 중국 조선업체로부터 대형 상선 수주가 두산엔진의 전체 수익성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제조업 경기가 둔화되면서 두산엔진의 시장 평가 역시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이익 규모 감소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 수주 성공 여부가 내년도 한해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중국통인 김 CEO를 전면에 내세운 배경에는 중국 사업 관련 리스크를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CFO 대폭 물갈이..결국 밥캣 리스크 해소에 가능했던 일
한편, 이번 인사로 두산인프라코어는 새롭게 이호철 CFO를 선임했다. 이 CFO는 두산인프라코어에서 경영혁신부문 임원을 맡아왔다. 또 ㈜두산 지주부문 관리부문장에는 최형희 전 두산중공업 CFO가 선임됐다. 최 CFO는 두산중공업 근무 당시 재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재무구조 건전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이외에 두산그룹은 ㈜두산 글로넷BG장에 석낙양 전 두산동아 대표를, ㈜렉스콘 CEO에 정민철 전 ㈜두산 관리본부 임원, 두산베어스 CFO에 한형구 전 재무부문 임원을 각각 선임했다. 또 기존 두산엔진 이성희 CEO와 두산건설 김기동 CEO는 각각 해당 회사의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에 대해 두산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이번 재무라인들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가능했던 요인에는 밥캣 리스크 해소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인사의 핵심이었던 ㈜두산,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모두 지난 3년여간 밥캣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곳들이기 때문에, 밥캣 인수자금 부담이 남아있었다면 이번 인사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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