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28일 0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과거 한 때 컴퓨터마다 붙어 있던 카피다. "인텔이 장착되지 않으면 컴퓨터가 아니다"는 말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인텔의 기세는 대단했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했다. 퍼스널 컴퓨터의 폭발적 성장세와 더불어 과감한 투자와 기술 혁신을 밀어붙였던 인텔은 반도체 1등 기업이 됐다.철옹성만 같았던 인텔이 무너졌다. 지난 9월 16일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핵심은 파운드리 사업 분사다. IPO를 통한 외부 자금조달 방안도 내놨다. 대규모 적자가 원인이다. 모바일 성장 가능성을 간과한 여파가 컸다. 인공지능(AI) 시장의 성장 예측마저 제대로 못했다. 서버용 CPU 점유율 다수를 AMD에 내줬고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은 엔비디아에 뺐겼다. 반도체 제국의 허무한 몰락은 실기에 있었다.
삼성전자가 처한 현실과 닮은 구석이 많다. HBM에 대한 판단 미스가 대표적이다. 어떤 곳보다도 서둘러 HBM 연구를 시작했는데 2019년 HBM 개발팀을 축소했다. 성장성이 낮다고 봤다. 최근 들어 AI 붐이 일자 HBM은 대세가 됐다. HBM 연구개발을 이어온 SK하이닉스는 과실을 제대로 수확했다. 올 3분기 영업이익 7조원을 넘기며 삼성전자 반도체(DS)사업부 실적을 앞질렀다. 국내 메모리반도체 1등 기업이 뒤바뀐 순간이다.
그 원인을 경영자 측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이 역시 인텔과 비슷하다. 인텔이 패착을 둔 가장 큰 원인으로 반도체를 전혀 모르는 CEO들의 집권이 거론된다. 과거 반도체 전문가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등이 순차적으로 이끌던 시절 전성기를 맞이했던 인텔은 2005년 마케팅 전문가 폴 오텔리니, 2013년 재무통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에게 CEO를 맡겼다. 이 시기 원가절감에만 매달렸고 기술 개발은 등한시했다. 모바일로 재편되던 시기에도 기술개발비를 줄이겠다며 경쟁사보다 뒤떨어진 14㎚ 공정만 집중했다.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도 원가절감만 매달렸다 기술 개발 적기를 놓쳤다는 점이 거론된다. DS부문의 결정을 그 수장에게 맡기면 되는데 다수 의사결정을 사업지원TF에서 하고 있는 영향이다. DS부문장은 엔지니어지만 사업지원TF장은 재무통이다. 권오현 전 DS부문장 시절(2011년~2017년)엔 전권이 컸는데 지금은 사업지원TF 힘이 보다 크다는 게 관계자들 말이다. 삼성전자가 2등 기업으로 떨어진 것이 '기술'보다 '재무'가 강해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평가가 많다.
인텔의 몰락에서 삼성전자가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경쟁자의 실패라고 마냥 좋아할 일도 강 건너 불구경을 할 때도 아니다.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 분사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고 기술전문가 힘을 키워주는 경영진 쇄신도 필요한 때다. TSMC와 격차를 전혀 줄이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이번 위기 대응을 제대로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인텔과 다른 길을 걸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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