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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위기, 디레버리징이 답인가?

길진홍 기자공개 2012-01-26 08:38:58

이 기사는 2012년 01월 26일 08: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디레버리징(부채·투자 축소)이 화두다. 미국은 가계 디레버리징 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최근 유로존 재정위기와 맞물려 유럽계 은행들이 잇따라 자본확충에 나서면서 시장은 그 파급효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디레버리징 공포는 잠시 잊혀지는 듯했으나 다시 우리에게 ‘외화 유동성 관리'라는 숙제를 남겼다. 세계경제 불확실성은 성장을 희생해서라도 긴축하라는 메시지를 잇따라 던지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의 맏형 격인 시공능력순위 상위 10위권 내 대형 건설사의 CFO들은 올해 재무전략의 방향을 묻는 물음에 6명이 부채축소라고 답했다. 현금성 자산 비축에 주력할 것이란 CFO도 2명에 달한다. 성장보다는 위기관리를 통한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로 몰아 부쳤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가져다 준 교훈이다.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레버리지를 통한 투자를 접고 수년째 단단히 빗장을 걸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의 시대에 디레버리징은 만병 통치약인가. 디레버리징은 필연적으로 성장 정체를 동반한다. 장기간 투자와 성장이 멈추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디레버리징이 품고 있는 독이다.

건설업계가 처한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계 지표상 국내 건설시장은 성장기를 넘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종합건설사 수주액 총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127조원을 정점으로 매년 하향 추세에 있다. 건설투자가 줄면서 지난해 수주액은 102조원에 그쳤다. 건설업의 선행시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업계는 매출감소로 급여삭감과 인력감축을 단행하고 있다.

해외 건설사업은 이미 포화 상태다. 국내 기업들의 수주 텃밭이라 할 수 있는 중동에서는 중국계 건설사가 일감을 쓸어가고 있다. 중동 건설시장의 자금 줄 역할을 하던 유럽계 자본이 움츠려들면서 발주 물량도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일부 신흥국을 제외하고는 정체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생존을 위해서는 먹거리 창출이 시급하지만 대부분 업체가 디레버리징의 덫에 묶여 신규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은 대형 건설사들도 국내 관급 공사와 해외 플랜트 부문에 의존하는 획일적인 매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건설 수주실적 591억달러 중 중동 물량이 50%에 달한다. 이 가운데 플랜트 비중이 73%에 이른다. 해외 건설사업 공종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건설사들은 매년 한 목소리로 신성장동력 발굴과 신시장 개척을 부르짖고 있으나 수년째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투자에 인색한 결과다. 안정을 추구하는 디레버리징과 리스크가 동반되는 신규 사업 발굴은 애초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다. 일부 대형 건설사의 경우 외형 유지를 위한 저가 수주에 나서면서 수익성을 좀먹는 원가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도 대부분 건설사들이 경영전략에 신성장동력 발굴과 관련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담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 진출과 에너지와 물환경 등의 공종다각화라는 틀이 잡혔지만 신시장 진출에 따르는 위험 요인이 걸림돌이다. 그러나 새로운 먹거리를 얻을 기회가 있다면 과감히 투자에 나서야 한다. 리스크 관리와 병행해 공종 다각화를 위한 인수합병(M&A)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는 등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도 있다.

특히 대형 건설사들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거의 제로금리 수준에서 직접금융시장으로부터 투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디레버리징의 함정에 빠져 체질 개선의 고삐를 늦출 경우 한계기업으로 내몰린 우량 중견 건설사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살아남고자 한다면 디레버리징 국면 이후의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 기업 생태계에 영원한 1등도 꼴찌도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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