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의무화되면 대표주관수수료 확산? <16>기업, 평판리스크 관리 차원 동조 VS 힘의 불규형 여전할 것
서세미 기자/ 황철 기자공개 2012-03-13 11:44:40
[편집자주]
2012년, 회사채 발행시장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고민 끝에 만들어 낸 제도개선이 본격 시행된다. 사실상 무늬에 그쳤던 대표주관사의 수요예측과 기업실사가 의무화된다. 이로 인해 관행으로 굳어졌던 수수료녹이기나 바터(barter) 등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도입되는 발행절차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머니투데이 더벨이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2012년 03월 13일 11: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4월 수요예측 시행 이후 대표주관수수료 수취 사례가 더욱 확산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투자은행들의 역할이 커진 만큼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는 긍정론이 세를 이룬다. 적정 수수료가 업계 표준으로 정착하면 발행사 입장에서 평판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라도 지급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분석.그러나 전체 회사채 물량의 2/3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AA급 이상 우량기업이 '갑'의 위치를 내려놓고 IB를 동등한 조달 파트너로 인정해주겠느냐는 데 대한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당국의 정책의지와 여론형성으로 마지못해 수수료 지급에 나설 가능성은 있지만 시장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 "발행사, 기대 이상으로 수수료 지급에 우호적"
일단 시작은 괜찮은 편이다. 아직 기업실사만 시행하고 있는 단계라 대표주관수수료를 받은 사례는 적지만 예상보다 일찍 발행사를 설득해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수요예측 실시 이후 증권사 역할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수수료 수취가 일종의 관행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반 환경은 괜찮게 형성되고 있다. 당장 4월부터는 대표주관 계약서 상에 수수료를 기입하는 부분이 따로 마련된다. 이렇게 하면 발행사가 일종의 분위기상 공란으로 비워두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대가를 지불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일부 발행사들은 수요예측 이후 대표주관수수료를 낼 의향을 IB업계에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시장 참가자들 역시 주선수수료 확산 가능성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량기업의 경우 비용 증가를 이유로 수수료 지급을 극도로 꺼릴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평판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금융당국이 발행제도 정상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 발행사도 자의반 타의반 협조적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발행사를 찾아다니며 대표주관수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다수 발행사들이 증권사 입장을 이해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AA급에서는 최초로 대표주관수수료를 지불한 GS에너지의 관계자 역시 "발행제도 개선 이후 기업실사를 강화한 것도 이유지만 좋은 조건에 발행할 수 있게 도와준 대우증권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말했다.
◇ "대표주관수수료 받지 않겠다"는 증권사도 있어
그러나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여전히 발행사가 '갑'의 위치에 있는 만큼 자칫 잘못하면 대표주관수수료의 패러다임(paradigm)이 증권사가 아닌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표주관수수료를 선제적으로 수취한 증권사조차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앞선 모습이다.
동양증권은 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수료를 받았지만 우량채로의 확산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수요예측 도입 목적 중 하나가 발행사의 힘을 좀 줄여보자는 것인데 인수경쟁이 워낙 심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AA급 이상 회사채는 인수 수요가 워낙 많아 발행사가 입맛에 맞는 주관사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라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우량채의 경우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기업실사가 이뤄지고 북빌딩 역시 당분간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인수 부담 역시 적어 수수료를 강하게 요구할 명분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실제로 몇몇 증권사들은 아직까지 대표주관수수료를 받을 계획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대표주관수수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먼저 나서서 발행사에 수수료를 요구하기가 껄끄럽다는 것이다. 괜히 미운털 박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
심지어 일부 증권사는 제도 개선의 취지를 역행하는 것을 세일즈 방편으로 삼으려는 의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아직까지 대표주관수수료를 받을 생각이 없다"며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의 자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은 어쩔 수 없지만 기업실사, 수요예측 등 자체적인 인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좋게 보면 수익 창출보다 발행사와의 네트워크 형성에 무게를 둔 영업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정 수수료에 대한 컨센서스를 형성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나홀로 저가 영업에 나서는 것은 시장참가자 대다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AA급 우량 기업으로부터 첫 대표주관수수료를 받은 대우증권조차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대표주관수수료를 수취한 것 자체가 민감한 이슈를 만들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며 "선두주자로 관심 받으면서 다른 경쟁사들의 견제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발행사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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