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한국 선박금융 '변방'에서 벗어나려면

부산=김익환 기자공개 2012-11-02 15:27:18

이 기사는 2012년 11월 02일 15: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일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 말쑥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2층 그랜드볼룸 주변을 서성인다. 선박금융 시장 관계자 200여명이 모처럼 모였다. 해운·조선사, 금융회사, 로펌, 회계법인, 기관 등 소속도 다채롭다. 초면에 명함을 건네고 인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들은 부산시와 선박금융전문지 마린머니는 이날 개최한 '제6회 선박금융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글로벌 선박금융을 주름잡는 핵심 관계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DVB은행, DNB은행, ABN암로 은행, 타이거펀드를 비롯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눈에 띈다. 주요 관계자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현장이었다. 744달러에 달하는 적잖은 참석비를 아낌없이 지출하는 이유다.

크기변환_사본 -IMG_6575
*6회 한국선박금융포럼 전경

다만 국내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선박금융포럼을 외국 금융전문지가 주최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선박금융 중심이 유럽·미국이란 점을 여실히 보여준 듯하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선박금융의 변방지인 셈이다.

선박금융은 달러화로 거래된다. 그 까닭에 달러 조달금리가 비교적 낮은 유럽·미국은 자연스럽게 선박금융 허브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도 선박금융 중심지 요건을 일부 갖췄다. 조선산업이 세계 정상급이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국내에서 파생된 선박금융에 보증·보험을 제공하며 세계적 선박금융 업체와 숱한 거래를 했다.

하지만 우리 안방 선박금융 시장은 여전히 해외 금융회사가 주무른다. 국내 조선소와 해운사가 조달하는 선박금융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보증을 제공받는다. 하지만 선박금융의 핵심인 대출은 외국 은행에서 주로 실행한다. 금리비용이 국내 시중은행보다 저렴한 탓이다. 선박금융 거래의 리스크(Risk)는 국내 정책기관이 떠안지만 선박금융의 수익(Return)은 외국 은행이 챙기는 셈이다. 외국계 은행은 국내 선박금융 거래가 꽃놀이패인 셈이다.

외국 은행은 국내 선박금융 거래를 따내며 트랙레코드를 쌓지만 국내 기관은 소외된다. 트랙레코드를 축적한 외국 은행에 거래가 몰리고 국내 선박금융 관계자는 바라만 봐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국내 금융회사 및 로펌·회계법인 등이 선박금융 거래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이유다.

트랙레코드가 축적되지 않은 까닭에 선박금융 투자에서도 헛발질을 한다.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 한참 해운시황이 고점일 때 국내 은행과 연기금, 캐피탈사가 선박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하지만 금세 시황이 고꾸라지면서 선박 투자는 손실만을 남겼다. 선박 거래에 대한 트랙레코드와 전문인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선박 거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은 국내 은행과 기관은 급격히 위축됐다. 연기금 등은 선박투자 포트폴리오를 급격히 줄였고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선박금융팀을 잇따라 해체했다.

하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계기가 생겼다. 유럽재정위기로 선박금융의 주축이었던 유럽 은행이 잇달아 선박금융을 축소하고 나섰다. 대표적 선박펀드인 독일 KG펀드도 재정위기로 투자에 제동이 걸렸다.

반면 국내 시장여건은 나쁘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하면서 국내 금융회사의 자금 조달여건은 개선됐다. 아울러 넘치는 유동성을 보유한 국내 연기금과 보험사는 사상 최저 수준인 채권금리 탓에 투자처가 없어 아우성이다. 그 까닭에 해운사 MSC, 에버그린, 카길 등이 국내 기관투자가에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에서 빠진 유동성 공백을 채워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문제는 선박의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선박금융 구조를 짜는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트랙레코드가 없어서 시장의 문이 열렸지만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외화조달의 장벽은 높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 온다. 실제로 유럽재정위기는 우리 선박금융 참여자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문제는 국제금융인력을 양성하고 트랙레코드를 축적해야 기회가 와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선박금융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국내 은행과 연기금 등도 선박금융 부서를 유지하면서 트랙레코드를 쌓는 등 길게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할 때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