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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대한 예의, 세가지 나쁜 예

강종구 기자공개 2013-02-19 22:39:01

이 기사는 2013년 02월 19일 22: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GS건설이 최근 투자 설명회(IR)를 가졌다. 주식시장과 회사채 시장,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가를 포함해 이해관계자가 수만 명은 족히 될 회사였지만 투자설명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오신 손님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지난해 실적을 요약한 몇 장 짜리 보고서가 전부였다.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배경을 널리 알리기는 싫었으리라.

GS건설은 2009~2010년 중동의 한 나라에서 총 4조8000억 원에 이르는 3건의 공사를 따냈다. 이 중 7000억 원짜리 한 사업장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원가율이 100%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머지 2건의 공사도 손실이 발생한 그 사업장과 발주처가 같다. 더구나 세 사업장은 서로 관계가 매우 깊은 연계된 시설들이다. 손실이 1000억 원이 아니라 그 7배가 아닐까, 의심과 우려가 하늘 끝까지 닿을 지경이지만 보고서에서도 경영진의 입에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아무래도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니다.

만기가 3년, 5년에 이르는 장기 기업어음과 사모사채 발행이 줄을 잇는다. 올 들어서만 LS전선 LG전자 롯데쇼핑 GS칼텍스 현대제철 LG실트론 대림코퍼레이션 두산중공업 등 하나 같이 높은 신용등급을 갖춘 국가대표급 우량 기업들이다.

이 장기 기업어음과 사모 사채는 공모 회사채 투자자들에게는 골치 아픈 리스크다. 재무구조는 괜찮은지, 신용이나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금리는 적정한 수준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회사채를 사고 보니, 불쑥 장기 기업어음이나 사모사채가 튀어 나온다. 회사가 오른 손으로 공모채 발행을 하면서 왼손으로는 비밀스런 자금조달에 나선 것이다. 시장의 규율이 잘 발달된 외국 같으면 대번 소송이라도 걸릴 일이지만 국내 기업의 CFO들은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금융당국은 장기 기업어음이 투자자보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사실상의 금지조치인 셈인데, 특유의 기업 프랜들리 정신을 발휘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원 없이 해 보라는 것인지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정부에서조차 당분간 눈 감아주기로 한 것이니 뭐라 나무라기도 어렵지만 아무래도 국가대표급 기업의 품위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LG상사의 신용등급을 AA급으로 올려준 일이 논란의 대상이다. 시장의 전문가들은 연간 결산실적이 확정되기도 전에 간략한 잠정 실적만 공시된 상태에서 등급을 올린 것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은 이 같은 시장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나라 신용등급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고 해도 A급과 AA급은 격이 다르다. 명실공히 초우량기업의 반열에 올랐다는 징표와도 같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1부 리그의 붙박이 주전이고, 영화배우로 치면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흥행 보증수표다. 투자자층이나 채권의 가격 등 시장의 대우도 걸맞게 격상된다.

누군가를 대우하려면 납득이 필요하다. 납득을 위해서는 합당한 '소통의 과정'이 마땅히 선행돼야 한다. 최고위직 공무원이 되기 전에 반드시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도 LG상사의 신용등급 상향에는 청문회가 없었다. 신용평가사는 회사로부터 평가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건네 받았겠지만 공정공시에 묶인 투자자들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 고작 숫자 몇 개만 볼 수 있을 뿐 잠정 실적 뒤에 숨겨진 회사의 진면모를 알 수 없었다. 좋아졌다고 하니 좋아졌겠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잠정 실적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신용등급을 올릴 때까지 신용평가사들은 어떤 낌새도 보여주지 않았다. 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조정하지도, '상향 검토' 대상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런 공식적인 절차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코멘트를 통해 회사의 변화와 그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소통의 과정들은 생략됐다.

그렇게 LG상사의 신용등급 상향은 아무 예고도 없이, 이해나 납득을 청하지도 않고 투자자들의 무조건적인 수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투자자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우월적 정보를 누리게 된 신용평가사가 그 정보의 진짜 주인에게 행세를 하는 형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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