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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도, 적도 없는 '황금의 제국'

이진우 부장(산업팀장, 건설금융팀장)공개 2013-09-30 08:06:14

이 기사는 2013년 09월 27일 08: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지 마라.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돼라. 승자가 모든 걸 갖게 된다."

"싸인 하나로 수조 원의 투자를 결정하고, 식탁에서 밥 먹다가 백화점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 수백 억의 돈을 날리고도 아버지한테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끝나는 그곳, 같이 가자. 황금의 제국으로."

최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모 방송사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 등장하는 대사들이다. 이 드라마는 신도시 개발에서부터 외환위기,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서울 한강변 개발 등 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굵직한 이슈들을 배경으로 재벌가의 암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황금'으로 함축되는 대기업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와 합종연횡을 펼친다. 부모, 형제, 자매, 사위, 삼촌, 사촌 가리지 않고 이익이 되면 순식간에 손을 잡고, 반대로 해가 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등을 돌린다.

한마디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더욱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시멘트 회사로 출발해 굴지의 재벌그룹으로 성장한 '성진그룹' 일가의 아침식탁 위에서 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서로 손잡고, 경계하고, 반목하면서도 매일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다. 이 자리에서는 커다란 계열사의 주인이 순식간에 바뀌고, 사업에 실패해 큰 손해를 끼쳐도 야단 한번 맞으면 그만이다.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해 과장된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드라마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한국 경제사의 큰 이슈들과 함께 국내 재벌가의 실제 현실이 적잖이 오버랩 된다.

드라마 속 성진그룹과 마찬가지로 시멘트를 모태로 한 동양그룹의 최근 유동성 위기가 대표적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재벌가 형제간 다툼,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둘러싼 또 다른 그룹의 형제간 다툼, 윤석금(웅진)·선종구(하이마트)·강덕수(STX)·박병엽(팬택) 등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최고경영자(CEO)들의 연이은 몰락도 알게모르게 연상된다.

동양그룹은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친족기업인 오리온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매정하게 거절당했다. 공교롭게도 여염집 같으면 한번쯤은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을 법한 추석 명절 직후에 결론이 내려졌다. 고 이양구 창업주의 두 딸(이혜경, 이화경)과 사위(현재현, 담철곤), 그리고 장모(이관희 여사)간의 심적 부담이 큰 의견조율, 치열한 신경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적지 않은 상흔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원을 요청했거나, 이를 거절한 쪽, 또는 이를 조율하거나 종용을 한 쪽 어느 누구도 비난하거나 편을 들 생각은 없다. 어떤 결정을 내렸던 간에 뒷말은 나오기 마련이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 역시 외롭고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서도 역시 '황금을 차지하는' 회장은 그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모두의, 심지어 가족들의 거센 도전을 받는다.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이 자리는 오직 물질과 돈, 세력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애 좋던 재벌가 형제들이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거나, 창업주가 물려준 재산 등을 둘러싸고 법정소송까지 불사하며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는 것 역시 '황금'에서 파생되는 부작용들이다.

한때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주변 세력, 사람들이 어느 날 비정하게 등을 돌리는 것을 목격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들 역시 스스로 자본의 논리를 토대로 성장했지만, 역으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추락하는 드라마 속 운명과 일부 일치한다.

"설득은 말로 하는게 아니라 힘으로 하는 것이다. 땀을 흘리기 보다는 남의 땀을 훔쳐야 한다. 패한 뒤에 좋은 이미지가 무슨 소용 있나.", "욕심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상처가 커지고, 지키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많이 잃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황금' 이란 선택 앞에서 어느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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