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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PB는 문제없나요? [thebell desk]

김용관 기자공개 2013-10-15 11:22:42

이 기사는 2013년 10월 14일 07: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국이나 홍콩, 싱가포르에서 개인 고객의 계좌를 개설하는 작업은 프라이빗 뱅커(PB)에게 고역이다. 증권사 창구에서 이름 쓰고, 주민등록번호 적고, 사인만 하면 계좌를 개설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계좌를 만드데만 한달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KYC(Know Your Client) 룰' 때문이다. 말 그대로 PB와 증권사에게 ‘당신의 고객을 정확하게 알고' 업무에 임하라는 일종의 '경고'다.

기본적으로 자금세탁 및 테러 등 불법 행위와 관련된 자금이 금융기관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지만 결과적으로 고객들의 재산을 리스크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이 크다고 한다.

PB는 약 한달의 시간을 들여 직업, 가족, 취미, 인적 네트워크 등 사생활은 물론이고 재무건전성과 투자 성향 등을 파악해야 한다. 상품 이해도나 리스크 수용범위, 다른 금융기관에 예치된 자산 현황 등도 상담 대상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개인 고객에게도 투자 등급이나 보유 자산에 따른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신용 투자와 비슷하지만 주식 외에 모든 자산에 대한 등급을 매겨 크레딧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위가 넓다. KYC 과정에서 고객별, 자산별 크레딧 산정 작업도 모두 마친다고 한다.

이같은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컴플라이언스 부서의 승인이 떨어지고 비로소 내 고객이 될 수 있다. 고객의 상담 내용은 모두 전산망에 등록된다. 하지만 고객과의 KYC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계좌 개설이 불가능해진다. 고액자산가를 모시지 못해 안달인 우리 증권사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내 고객이 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고객의 자산을 불려주는 힘든 일이 시작된 것이다. 상품을 발굴, 편입하는 것은 KYC 과정에서 진단한 고객 평가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진다.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쳐 고객의 투자 등급에 맞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특이한 상품에 투자할 경우 '워닝 시그널'이 뜬다.

예를 들어 은퇴 이후 안정적인 투자를 추구하는 고객의 포트폴리오에 이머징 국채나 수익률이 과도하게 높은 CP같은 고위험 상품이 편입될 경우 컴플라이언스 부서는 PB에게 투자 배경에 대해 소명할 것을 요구한다. PB가 투자 이유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할 경우 벌금은 물론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불완전 판매와 민원 발생을 막기 위한 회사 차원의 엄격한 사전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투자자와 충분한 상담을 거쳐 법적인 절차에 따라 투자가 이뤄졌다면 이후에 어떤 일이 발생해도 모든 책임은 투자자가 진다.

최근 동양그룹 사태로 인해 촉발된 동양증권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최근 만난 홍콩 소재 PB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수익에 따른 리스크를 잘 알고 있는 투자자들이 투자 결과에 대해 항의하는 모습이 이상하고, 국내 증권사의 후진적 위험 관리 시스템이 이해 안된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와 리먼 사태를 겪으면서 국내 증권사의 영업 시스템도 한단계 성숙해졌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계좌 여는데 한달 이상 걸리고, 자금 출처나 개인 사생활을 꼼꼼히 파고들면 어떤 고객이 거래할까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니까요. 수억원을 들고 오는 고객을 내칠 순 없어요."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자산관리(WM) 시장이 낙후돼 있다. 증권사는 고객 자금만 유치하면 그만이다. 리스크 관리는 딴나라 이야기다. WM 영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비용 절감이라는 목소리에 파묻히고 만다.

비단 동양증권 뿐일까. 삼성이나 우리, 대우, 미래 등 다른 증권사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걸리지 않았으니 강건너 불구경하듯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PB가 고객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듯 개인도 PB(혹은 증권사)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KYP(Know Your Private Banker)'의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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