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04월 16일 11: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두 달 전 KB투자증권을 찾은 것은 채권 시장 돌아가는 얘길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국내 부채자본시장(DCM)에서 KB투자증권의 존재감은 무시 못한다. 지난해 DCM 대표주관 1위. 총 15조 원어치 거래를 수임하며 자신보다 덩치가 5배 이상 큰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올 1분기 DCM 리그테이블에서도 부동의 1위다.그런데 웬일인지 당시 인터뷰이로 나선 박성원 상무(기업금융본부 부본부장)는 줄곧 에퀴티 시장 얘기만 했다. "올해는 유상증자나 CB(전환사채) 같은 주식 딜에 신경을 많이 쓸 것이다. 은퇴 전까지 ECM(주식자본시장) 주관 실적을 본궤도에 올려놓는 게 꿈이다." '채권통'으로 불리는 그의 말 치고는 이례적이었다.
사실 과거 ECM에서 KB투자증권의 행보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8건의 에퀴티 딜을 대표·공동주관하는 데 그쳤다. 그 마저도 2011년 2500억 원 규모의 대한전선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공동주관한 것을 빼고는 딱히 내세울 만한 트랙레코드(주관 실적)가 없다. 100억~500억 원의 소규모 딜 수행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두 달 새 KB투자증권은 국내 ECM의 다크호스가 돼 있었다. 지난달엔 200억 원 규모의 한솔홈데코 CB를 대표주관했다. 이는 시작일 뿐, 현재는 GS건설(5250억 원)과 KCC건설(1511억 원) 유상증자 대표주관사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다. 둘 다 KB투자증권이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빅딜이다.
올해 ECM 랜드마크 딜로 꼽히는 GS건설 증자는 GS그룹이 범 LG가(家)로 분류되는 특성상 우리투자증권(옛 LG투자증권)의 단독 주관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KB투자증권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공동 대표주관사 타이틀을 따냈다. KCC건설 증자도 KB투자증권이 1500억 원대 딜을 홀로 대표주관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 거래가 모두 성사되면 KB투자증권은 더벨 리그테이블 기준 4000여억 원의 대표주관 실적을 쌓게 된다. 이제 2분기에 갓 들어선 시점에서 예단은 어렵지만, 적어도 유상증자 부문에선 올해 상위권 진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KB투자증권의 ECM 트랙레코드가 갑자기 풍성해진 비결은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채권에서 찾아야할 듯 싶다. KB투자증권은 지난해 DCM 업무를 수행하면서 총 7조~8조 원어치 채권을 인수했다. 자기자본(약 5500억 원)의 12배를 웃도는 규모다. 그리고 이 중엔 IB업계에서 '주홍글씨'로 통하는 건설사 회사채가 유독 많았다. 신용등급이 낮아 증권사들이 기피하는 취약 업종 물량을 KB투자증권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줬다. 리스크 회피가 아닌 테이킹(taking)에서 먹거리를 찾는 IB의 본분에 충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려울 때 도와준 IB를 기업은 잊지 않았다. 최근 KB투자증권에게 에퀴티 딜 맨데이트를 부여한 발행사들이 주로 건설업체(GS건설·KCC건설 등)였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마침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국내 채권 시장에선 자금 조달이 어려워 에퀴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CM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KB투자증권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머지 않아 'ECM 강자 KB투자증권'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을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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