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07월 04일 07시5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부채자본시장(DCM)에는 유효신용등급이라는 개념이 있다. 회사채·기업어음시장에서 단일하게 통용하는 등급으로 대부분 실제 신용등급과 동일하다. 복수의 신용평가사로 부여받은 등급이 불일치할 경우에는 혼선을 줄이기 위해 임의로 산정한다. 채권시가평가의 기준이 되고 실제 민평 가격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개념이다.당연히 투자자에게는 의사결정의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신용등급별 편입 비율을 다르게 가져가는 기관투자가나 펀드의 특성상 유효등급 변화만으로 채권 수요기반이 달라지기도 한다. 발행사 입장에서 유리한 조건의 조달을 성사하기 위해 어떻게든 사수해야 할 가치로 인식될 만하다.
올해 들어 유효등급을 둘러싼 화제 거리가 제법 있었다. 국내 최우량 기업이자 최대 회사채 발행사 중 하나인 포스코의 유효등급은 최근 이틀 만에 두 번이나 바뀌었다.
지난달 11일 한국기업평가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A+로 떨어뜨렸다. 동시에 국내 최고였던 유효등급도 하락했다. 그러나 이틀 뒤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가 AAA로 유지해 유효등급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유효등급은 최근 나온 평가 결과 중 낮은 것을 택한다. 한국기업평가가 두 신평사 중 한 군데보다 조금만 늦게 평정에 나섰어도 포스코는 회사채 시장에서 AAA급 지위를 상실할 뻔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다. 대신증권에 인수된 옛 우리F&I가 그랬다. 5월9일 대신F&I의 유효등급은 한국기업평가의 조치로 기존 AA-에서 A+로 떨어졌다. 대주주 지원 가능성의 약화가 이유였다.
불과 1영업일 뒤인 같은달 12일(월요일) 한국신용평가는 AA- 유지 방침을 밝혔다. 23일 나이스신용평가도 기존 하향검토 대상(↓) 조치를 철회하고 AA-로 평정했다. 대신F&I는 한기평의 선제적 평정 또는 나머지 두 평가사의 뒤늦은 결정으로 AA급의 유효등급을 지킬 수 있었다.
포스코와 대신F&I의 사례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AAA에서 AA+, AA-에서 A+라는 단순히 한 노치(Notch) 차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 유효등급 강등을 막았다는 게 첫 번째다. 펀더멘털이나 신용도 개선과 무관하게 신용등급을 강등한 평가사가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평정에 나서 유효등급을 방어했다는 것도 동일하다.
우연의 일치라 보기에는 뭔가 뒤가 구리다. 시장에서는 이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고 그럴 듯한 정황들도 있었다. 여기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가리자는 게 아니다. 분명한 것은 편의를 위해 만든 유효등급의 논리가 평가업계의 고질적인 폐단으로 꼽히는 등급 세일즈를 유발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당국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실제 여건상 사전접촉을 통해 등급결과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공표 시점을 조절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등급을 강등한 평가사도 선제적 평가 결과 발표를 통해 적어도 계열사나 관련 유가증권(ABCP 등)의 평정의뢰를 보장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유효등급의 맹점은 국내 신용평가업계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사례일 수도 있다. 평가사별 특색 없이 붕어빵처럼 등급을 찍어내는 구조에서 스플릿(불일치)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글로벌 평가사처럼 그저 AA 기업이 아니라 '한기평으로부터 AA를 받은 기업'으로 인정받는 시장, 한신평의 AA와 NICE신평의 AA가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올 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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