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5월 06일 14시2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찌는 더위와 매연으로 가득찬 도시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언어다. 배낭을 메고 하노이 시내를 누비는 내내 영어가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택시를 탈 때마다 지명과 호텔 이름을 대도 못 알아듣기 일쑤다. 지도에 점을 찍으며 가까스로 시내 호텔에 찾아갔던 첫날 앞으로 남은 4박 5일의 일정이 걱정됐다."갱남." 택시기사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이 한 마디가 나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하노이 구도심에서 6Km 정도 떨어진 랜드마크72로 가는 일 자체가 걱정인 내게 택시기사의 한 마디는 가뭄에 단비 같았다. 현지인들은 랜드마크72를 '갱남'이라 불렀다.
택시 뒷자석에 앉자마자 창문에 달아 놓은 햇볕 가리개를 떼어냈다. 창밖의 도시풍경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2차선 좁은 도로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역주행하는 차와 오토바이를 마주할 때면 아찔했다. 10여분쯤 달렸을까 구도심과 신도심을 구분하는 다강(Song Da)을 건넜다. 거북이걸음을 하던 택시가 6차선 넓은 도로를 만나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3~4층이 대부분이었던 구도심과는 다르게 여기저기 고층건물이 보였다. 눈이 닿는 곳곳에서 한국 건설사 로고가 달린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경전철 공사현장 가림막에 대림산업 로고가 선명하다. 대형 신축빌딩 공사현장 울타리에는 포스코건설 로고가 대문짝만하다. 신도심에는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이 한국형 주거단지를 조성중이다. 베트남에는 '건설한류'가 불고 있다.
택시기사 정면으로 저 멀리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랜드마크72다. 택시기사에게 손짓으로 가리키자 그는 "갱남"하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한 5분쯤 더 달렸을까 택시는 랜드마크72앞에 멈춰섰다. 가까이에서 올려다 본 랜드마크72는 웅장했다. 푸른빛이 도는 유리로 외관을 두른탓에 시원한 느낌이 든다.
베트남 '건설한류'의 원조는 랜드마크72다. 경남기업은 하노이 정도 1000주년 기념 빌딩 건축을 제의받고 2007년 랜드마크72 착공에 들어갔다. 완공은 정도 1000년을 맞이하는 2010년 예정돼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2011년 이뤄졌다. 베트남정부는 정치수도 하노이를 제1의 경제수도로 개발하려는 계획의 최우선 과제로 초고층빌딩 건설을 독려했다. 과거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호찌민(옛 사이공)의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68층 )보다 더 높은 빌딩을 건설하는 것이 구체적 목표였다.
로비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청량감이 돈다. 로비에는 1층~27층에 입주한 다국적기업 셀러리맨들로 북적였다. 현지에서 고용된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엘리트로 영어에 능통했다. 몇몇에 다가가 랜드마크72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랜드마크72에서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랜드마크72는 하노이의 상징이자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경남기업 법정관리로 랜드마크72의 운명은 풍전등화다. 경남기업 채권단과 랜드마크72 대주단은 원금회수에만 혈안이 돼 랜드마크72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누구든 랜드마크72를 매입해 은행에 원금을 회수해줄 수 있다면 얼마에 팔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1조 원대로 평가받던 랜드마크72의 가격이 6000억 원대까지 내려갔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랜드마크72의 가치는 단순히 숫자에 있지 않다. 랜드마크72는 베트남에 부는 '건설한류'의 상징이다. 매년 무서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에 한국 제조업체와 건설사들의 진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다행히 베트남정부 주도의 한국식 도시·주택 개발에 대한 베트남 현지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마침 한-베트남 FTA 협정으로 베트남 건설시장 진출에 더 유리한 여건이 마련됐다.
베트남에 '건설한류'의 씨앗을 뿌린 랜드마크72는 이제 한국 건설업을 상징하는 거목으로 자라났다. 각종 악재를 겪으며 위기의 순간을 잘 헤쳐왔다. 그러는 동안 작은 물결은 큰 파도가 돼 베트남 건설시장 깊숙히 파고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더 큰 '건설한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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