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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용기 전문가 배해동, 아름다움을 담다 [IPO & CEO]①배해동 토니모리 대표이사

신민규 기자공개 2015-05-15 09:40:15

이 기사는 2015년 05월 13일 09: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84년, 스물여섯살 배해동은 화장품회사 쥬리아의 직원 모집공고를 우연히 읽다가 호기심이 생겼다. 정윤희 등 당대 최고의 미녀스타를 전속모델로 기용하는 최고의 화장품 회사가 기계설계과 출신을 뽑는다는 게 언뜻 이해가 안갔다.

쥬리아는 화장품 용기(容器)를 설계하는 개발담당자가 필요했다. 제품을 보여주고 설계도면을 그리는 게 공채시험 문제였다. 배해동은 이전까지 이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기계설계과 출신으로 조선소나 자동차회사에서 일할 줄로만 생각했다. 이후 배해동은 30년 넘게 화장품 업계에서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직장생활은 순탄했다. 몇년이 되지 않아 화장품 용기개발 전문가로 자신감이 붙었다. 직장동료였던 아내도 당시 만났다.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7년만에 관뒀다. 아는 선배를 따라나가 용기개발 업무를 3년간 도와줬다. 회사원으로 마지막 직함은 부장. 입사 10년만에 회사원의 삶을 끝냈다.

10년간 모은 돈과 집 담보대출을 받아 자본금 5000만원을 마련했다. 1994년, 내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초년 시절 광주에서 단돈 5만원을 쥐고 상경했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배해동 토니모리 대표이사
△배해동 토니모리 대표이사
화장품 용기를 어느 기업이나 사용할 수 있는 프리몰드 형태로 만들어 납품하면 잘 팔릴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영세한 화장품 제조회사들이 용기까지 신경쓰는 일은 다소 벅찼다. 화장품 용기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태성산업은 그렇게 해서 설립됐다.

성공은 쉽게 오지 않았다. 1994년에 설립한 태성산업은 IMF 경제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거래처가 부도를 내며 돈줄이 막히기 시작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회사는 잡지의 판촉물을 만들어 기사회생했다. 본업에서 벗어난 일이었지만 위기는 모면했다.

배해동은 해외시장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영어, 일본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국내에서 주문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시장 개척만이 살 길이었다. 품질에는 자신 있었다. 아이디어만 이야기하면 원하는대로 설계해 납품까지 완벽하게 해내자 입소문을 탔다.

에스티로더, 라프레리, 크리니크를 비롯한 미국과 일본의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에서 주문이 수없이 밀려들었다. 한때 매출의 90%비중이 해외수출로 이뤄지기도 했다. 태성산업은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회사라 납기일자가 짧고 주야간 2교대를 해야했다. 국내에서는 경쟁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바이어들의 조언이 많았다.

외형확장이라는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연찮게 개성공단 입주기업 모집공고를 접했다. 리스크가 높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이미 마음이 기울었다. 초기 입주기업 15곳 중에 하나로 뽑혔다. 뭐든 한번하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으로 개성공단협의회 회장 이력도 이때 생겼다.

임금협상 등의 문제로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안양과 화성에 국내공장을 살려둬서 버틸 수 있었다. 개성공단 가동은 얼마안가 정상적으로 재개됐다. 태성산업은 지난해 연매출 529억 원, 영업이익 93억 원, 당기순이익 79억 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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