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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관리에는 계급장 따위 필요없다 [메리츠종금증권의 변신]③비전문가 배제한 4시간 난상토론…통과후엔 신속 집행

이상균 기자/ 최은진 기자공개 2015-07-13 16:53:54

[편집자주]

국내 증권업계가 불황에 허덕이던 최근 수년 간 메리츠종금증권은 초고속 성장을 했다. 증권사마다 인력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 때 홀로 수백 명의 경력직을 뽑은 곳도 메리츠종금증권이다. 수익성은 국내 증권사 중 단연 최고다. 한때 보잘 것 없는 소형사였던 메리츠종금증권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신을 했을까. 그 성공의 시간을 되짚어 본다.

이 기사는 2015년 07월 07일 15: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리스크관리 조직과 시스템, 방식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다른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최상단에 위치하고 그 밑에 리스크관리실무위원회와 심사위원회, 부문별 리스크관리 실무협의회가 있다.

차이는 운영방식에 있다. 진정한 리스크관리 전문가들이 모여 진심으로 리스크관리를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메리츠종금증권은 그게 되고 있다. 상명하복따위는 없다. 최고경영자부터 팀원까지 모두 계급장 떼고 제대로 한판의 난상토론을 벌인다. 누가 이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고자 하는 거래에 숨어 있는 리스크를 제대로 찾아내고 측정하는 게 목표다.

◇4년간 4배로 늘어난 리스크관리 인력

메리츠종금증권의 리스크관리본부는 대표이사 직속 조직이다. 리스크관리팀과 심사분석팀 등으로 구성된다. 심사분석팀이 14명, 리스크관리팀이 6명이다. 이중 리스크관리팀은 각 팀별로 양적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심사분석팀은 투자 건별로 심사를 맡는다. 투자 대상의 채무 상환 능력을 심사하고 투자유니버스 관리와 투자 및 인수자산의 사후관리, 크레딧 시장의 분석 및 모니터링 등을 담당한다.

핵심 부서인 심사분석팀의 인력은 14명에 달해 대형 증권사보다도 많다. 지금도 적지 않은 인력이지만 더 채용할 생각도 있다.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심사분석팀이 아예 없기도 한다. 심사분석팀은 다른 부수 업무에 대한 부담없이 오직 리스크심사만 한다. 대부분 직원이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다. 한두 명의 대리급 이하 직원을 제외하면 거의 외부에서 어렵게 스카웃한 능력자들이다.

리스크관리본부를 이끄는 것은 길기모 본부장이다. 길 본부장은 메리츠종금증권의 리스크관리를 책임지는 임원 3명 중 한명이다. 신한금융투자에서 크레딧 애널리스크로 근무하던 길 전무는 김용범 대표의 추천으로 2011년 3월 메리츠종금증권에 합류했다. 초고속 승진해 3년 9개월 만에 전무가 됐다. 길 본부장 영입 이후 5명에 불과하던 리스크관리본부 인력도 4년 만에 4배로 늘어났다.


◇전문가로만 구성된 리스크관리 회의

메리츠종금증권은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일주일에 두 번,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개최한다. 리스크관리위원회에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임원 3인(최희문 대표, 길기모 전무, 정남성 부사장)을 포함해 영업부서 본부장과 법무팀 직원, 실무자 등 10여명이 참석한다. 투자 건의 성격에 따라 참석 인원이 변한다. 회의가 끝난 후 인트라넷을 통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회사 규정상 4분의 3이 찬성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참석자들은 회의 전날 미리 투자 관련 자료를 이메일을 통해 넘겨받고 이를 면밀히 검토한 뒤 회의에 들어온다. 회의 때가 돼서야 부랴부랴 투자 심사를 시작하는 다른 증권사와 차이가 크다. 회의에 참석하는 인력들은 투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고 전문성을 갖췄을 경우에만 참석이 가능하다. 길 전무는 "보통 증권사의 리스크관리위원회에는 리스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경영지원 임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메리츠종금증권은 그렇지 않다"며 "리스크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만 보여 회의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난상토론으로 이뤄진다. 계급장을 떼고 할 말은 다 한다. 상하 직급관계가 경직된 국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것은 최고경영자가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희문 대표는 "회의 도중 실무 담당자가 내 의견과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며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투자심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메리츠종금증권의 리스크관리는 인력 구성뿐만 아니라 최종 책임자가 전문성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개방된 사고와 전문성, 균형 잡힌 사고 방식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국내 증권업계는 리스크관리 전문가가 CEO인 경우가 거의 없어 거치는 절차가 많고 비전문가들이 개입한다"며 "우리는 대표인 나부터 국내에서 손꼽히는 리스크관리 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최종 책임을 내가 지기 때문에 활발한 토론과 자신있는 의사결정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과율은 30%…신중한 결정, 신속한 집행

오전에 시작한 회의는 보통 4시간 이상이 걸린다. 점심 식사 이후까지 회의가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만 모든 투자 건은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통과하면 곧장 투자를 집행한다. 더 이상의 회의는 없다. 투자 건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면밀하게 살피되 통과된 사항은 빠르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의 투자 결정 과정이 상당히 빠르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회의할 때마다 심사하는 투자 건수는 10건 안팎이다. 이중 최종 투자결정이 이뤄지는 것은 약 30%다. 물론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올라오기 이전에 모든 투자 건은 2~3번의 사전 회의를 거친다.

길 전무는 "현재의 체계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운영된 지 4년이 지나면서 조직 구성원들도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졌다"며 "이제는 CEO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관리 위원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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