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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방향성'…산은 '우왕좌왕' 이유 있다 [산은 기업구조조정 흔들]③명확한 구조조정 추진 방향 없고 시장 상황·업종 특수성 반영 못해

안경주 기자공개 2015-11-12 12:25:24

이 기사는 2015년 11월 11일 1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지만 최근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모범기업'을 '좀비기업'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경제계 이슈로 떠오른 현대그룹 사례가 대표적이지만 선제적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손을 덴 동부·한진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은행은 개별기업이 아닌 장기 불황에 따른 산업 구조적 문제라고 항변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구조조정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맡아 실패하는 것은 우선 '구조조정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고통이 따르는 작업으로 저항을 뚫을 정도로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우선 대상부터 명확해야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고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인내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산업은행은 위기의 순간만 모면하려고 할 뿐 구조조정의 방향을 정하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A은행 관계자는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원칙을 정하기 보다는 자금지원이 필요한 순간만 모면하기 위한 전략을 고수했다"며 "그 결과,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STX조선해양이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의 키를 쥐고 2013년 STX조선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당시 채권단은 2조70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1년도 안돼 추가 부실이 드러나면서 1조8000억 원을 추가 지원했다. 지금까지 지원한 자금 규모만 총 4조5000억 원이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실사에서 또 부실이 드러나면서 대규모 자금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선 관계자는 "STX조선은 '자율협약'이라는 구조조정 방향을 정하고 시작한 케이스"라며 "채권단이 수 조원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방향 설정이 잘못되면서 얼마나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할지 모르게 됐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구조조정은 기업의 의견을 지나치게 배제해 실패한 사례다. 산업은행은 2013년 말부터 구조조정을 맡아 추진했다.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이 계열사 매각, 기업공개, 그리고 오너의 사재출연 등을 통해 3조 원 가량의 자금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성사 가능성 낮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파는 '패키지딜'을 시도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매각 골든타임을 놓쳐 그룹 전체의 자금난으로 이어졌다. 칼자루를 쥔 산업은행이 방향을 못잡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동부그룹은 회생의 길에서 멀어졌다. 동부그룹은 처음부터 산업은행과는 다른 해법을 제시해 구조조정을 추진하자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규모 자금만 지원하면 된다는 비효율적 방식의 구조조정 추진도 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을 총괄해 온 B은행 임원은 "산업은행은 대규모 자금 지원을 과감하게 결정하는 구조조정을 선호해 왔고 2000년대까지는 효과가 있었다"며 "이에 최근에도 산업 전망과 기업의 회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원정책이 필요하지만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자금지원'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대규모 자금만 지원해서 구조조정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시기가 지났지만 이를 애써 무시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구조조정 노하우가 쌓인 시중은행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은행의 이익을 중시하는 접근이 부족해 다른 채권은행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예컨대 쌍용건설 구조조정이나 팬택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B은행 임원은 "팬택 등 기업 구조조정을 보면 업황과 기업에 대한 명확한 평가 없이 우선 자금을 지원하다가 시중은행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자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며 "시장 상황을 무시하는 비효율적인 구조조정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산업은행의 태도도 구조조정 실패로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현대그룹 사례가 방증이다. 경제부처 수장들이 모여 주요 현안을 다루는 '서별관회의'에서 나온 안건이 마치 확정된 것인냥 알려지며 산업은행 실무진도 구조조정 추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C은행 구조조정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휘둘리면서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이 실패하고 있다"며 "대우조선의 한화 매각 중단, STX그룹 해체 과정에서의 법정관리 회피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산업은행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외부 입김과 별개로 그동안 쌓아 온 구조조정 노하우를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눈에 띄는 개선점은 없다. 업종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지적된다. 예컨대 부채비율 규제 등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구조조정 방식이 오히려 현대상선과 같은 기업을 옥죄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도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도록 활로를 터 줘야 하는데 지나치게 기업의 수치만을 고집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논리는 해운업계에서 한두번 지적한 논리가 아니다.

산업은행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들도 구조조정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인데다 시장 논리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졌다"며 "이를 무시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다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산업은행도 시장 논리에 바탕을 둔 구조조정을 처음부터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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