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12월 08일 07: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믿을 신(信) 부탁할 탁(託). '믿고 부탁한다'말 그대로 신탁(Trust,信託)이 가진 의미는 단순한 금융투자상품을 넘어선다. 위탁자의 특정한 재산권이 수탁자에게 넘어가기에 수탁자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퇴직연금처럼 특정 시점에 수익실현을 추구하는 상품도 아니다. 죽기 전과 죽은 후의 재산권까지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를 생각하면 신탁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다른 금융상품보다도 훨씬 넓어보인다.
현실은 달랐다. 대부분 은행들은 특정금전신탁을 집중적으로 팔아왔다. 사실상 신탁을 주가연계증권(ELS)나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취급하기 위한 도구로 썼다는 얘기다. 시중은행들이 보유한 신탁 규모만 봐도 2013년 이후 주가연계신탁(ELT) 등 특정금전신탁은 14조 원이 늘어난데 반해 재산신탁은 3조 원이 느는데 그쳤다.
물론 이유는 있다. 신탁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계기로 점차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신탁업이 금융투자업의 한 업무 단위에 포함된 상황에서 운용의 묘를 살려 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를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오죽하면 금융당국 관계자 또한 "신탁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며 "신탁을 다시 살리려면 자본시장법을 아예 뒤집어야한다"고 말했겠는가.
신탁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좁아지니 은행이 내놓는 신탁은 증권사의 랩어카운트 등에 비해 특별한 경쟁력이 없다. 신탁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유언대용신탁, 성년후견신탁 등 재산을 관리해주는 신탁이 성장해야 하지만 이는 후순위로 밀린지 오래다. 대신 대부분은 100bp에 가까운 보수를 챙겨다주는 ELT를 확장해왔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은 있다. 몇몇 은행들은 최근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하며 재산신탁을 키워갈 준비를 하고 있고 부동산관리 등 신규 영역을 발굴하려는 곳도 있다. 신탁업의 애매한 규정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유권해석을 받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당장은 어렵지만 고령화 시대에 신탁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신탁은 위탁자와 수탁자 간 1 대1 계약이라는 점에서 베일에 싸여있다. 겉보기에 흐릿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고객의 니즈를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상품일수도 있다. 자칫 사장(死藏)될 뻔했던 신탁시장에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자산관리 시장을 키워주는 중요한 씨앗이 될 것이다. 은행을 위해, 신탁을 위해, 그리고 고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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