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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M&A 트라우마를 지워라 [thebell note]

한희연 기자공개 2016-03-10 09:42:30

이 기사는 2016년 03월 08일 08: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3년 국민은행 임원회의.

인도네시아의 한 은행을 인수하자는 안건에 임원들은 하나 둘 반대의견을 내놨다. 성패가 불확실한 매물에 700억 원을 굳이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었다. 해외 투자 사례가 별로 없었던 당시에 인도네이시아 현지은행 지분을 인수하자는 안건은 임원들에게 다소 파격이었다.

임원들의 의견을 모두 듣고난 뒤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국내에서 여신 내주면서 2000억~3000억 원 부실난 경험 안 해보셨냐. 가능성에 700억 원 투자해 보자는데 해외란 이유로 왜 이렇게 몸을 사리려고만 하느냐"며 반대 의견을 일축했다.

국민은행은 결국 그해 인도네시아 BII(Bank International Indonesia) 지분을 싱가포르 테마섹과 함께 투자했다. 5년 뒤 강정원 행장이 지분을 팔았을 때는 초기 투자금액 700억 원의 5배 가량 되는 3600억 원의 가치로 BII는 성장해 있었다.

최근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 인수를 위한 실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두 번째 증권사 인수 시도다. 지난해 대우증권이 매물로 등장했을 때도 KB금융은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막판 베팅 가격에서 미래에셋증권에 밀려 고배를 마셔야 했다.

현대증권은 앞선 대우증권보다 말이 많은 매물이다. 우선 매각자의 매도 의사 진위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매수청구권 등 법적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우발채무가 상당한 점도 부담이다. 전통적인 강성 노조도 매수자 입장에선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인수가 확정까지의 시간적 여유도 상대적으로 적다.

KB금융 입장에선 신경 쓰이는 점이 한가지 더 있다. 평판 리스크다. 이번 현대증권 매물을 놓친다면 입찰가격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 'KB는 M&A에서 늘 물 먹는다'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우려다. 내외부적으로 KB금융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경영진들이 통 크게 베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들어왔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경영진들의 평판 리스크 의식 정도도 예전 딜에 비해 세졌다고 알려졌다. 이 문제가 KB금융 입찰가를 좌우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평판에 대한 우려가 트라우마로 작용, KB금융의 활동범위를 스스로 줄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현재 현대증권 인수전을 준비하는 KB금융 전략 라인은 윤종규 회장, 김옥찬 사장, 이동철 전무 등이다. 성공 투자 사례로 꼽히는 10여 년 전 BII 지분투자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평판에 갇히기 보다는 좀더 자신감을 갖고 딜에 임하기에 충분한 경험을 가졌다는 얘기다. 이번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보수적 가격을 써 내든 통 크게 베팅하든, 이들 경영진들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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