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 경영' 패러다임의 대전환 [이건희 와병 2년, 삼성의 변화]②위기 '극복' 넘어 '예방' 초점… 경영전략 대원칙 '경쟁력'
정호창 기자공개 2016-05-03 08:28:33
[편집자주]
오는 10일이면 삼성그룹 오너이자 최고 경영권자인 이건희 회장이 와병에 들어가 경영에서 손을 뗀 지 만 2년이 된다.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경영체제가 들어선 지 2주년이다. 창업 이래 최대 격변기를 맞고 있는 삼성그룹의 변화와 미래상을 점검해 본다.
이 기사는 2016년 05월 02일 14: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병석에 누운 부친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선 지난 2년간 삼성그룹은 내부 관계자들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변화를 겪었다. 새 주인 품으로 떠나보내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계열사 수가 10여 곳에 달할 정도로 그룹 포트폴리오에 대수술이 이뤄졌다.삼성그룹은 이 회장이 와병에 들어간 후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2014년 말, 한화그룹과의 '자발적 빅딜'을 단행해 삼성테크윈·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탈레스 등 화학·방위산업 계열사를 정리했다. 대대적인 그룹 포트폴리오 재편의 서막이었다.
이듬해인 2015년 10월 삼성그룹은 또 하나의 '빅딜'을 단행한다. 이번 상대는 롯데그룹이었으며, 삼성SDI 케미칼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을 매각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이로써 삼성그룹은 40년 이상 영위해 온 화학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삼성그룹을 강타한 구조조정 태풍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올 초엔 그룹의 광고업무를 도맡고 있는 제일기획 매각을 결정하고 현재 프랑스 퍼블리시스 그룹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삼성전자 비주력 사업부 일부와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 비핵심자산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재계에선 삼성그룹이 향후 건설과 중공업, 보안 사업 등에서도 철수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재편 작업을 주도한 주인공은 삼성그룹의 새 리더인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한화·롯데그룹과의 빅딜을 오너간 대화를 통해 직접 결정짓는 등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이 같은 계열사 매각 배경을 놓고 이 부회장이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과의 후계구도 경쟁을 염두에 둔 조치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에 들어간 직후 고개를 든 삼성그룹 '3분할 승계론'과 궤를 같이 하는 분석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같은 분석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지난 2년간 단행된 구조조정 작업이 글로벌 경기 및 시장 변화와 무관치 않은데다, 결과적으로 삼성그룹의 경쟁력 강화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기는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고 저유가와 각국 환율 급변 등 악재는 더욱 심화됐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며,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위기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에 우선을 둬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장은 경영에 문제가 없는 기업일지라도 고정비가 큰 제조업은 오랜 경기침체를 견딜 수 없으므로 선제적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부친을 보좌하며 20년 이상 글로벌 시장 변화를 경험하고 관찰하며 가다듬어진 그의 촉이 몸집을 줄이고 한파를 견딜 체력을 비축해야 할 때라는 인식을 머릿속에 자리잡게 했다.
그는 선대가 일군 거대한 기업군을 과감히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룹의 지원없이 자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춘 분야 외에는 모두 정리해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기다린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40년 이상 영위해 온 화학사업 등에서 미련없이 손을 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당시 고개를 갸웃했던 시장에서도 이제는 이 부회장의 선택에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와 시장 변화에 대한 대처가 늦었던 두산·현대·한진그룹 등의 몰락이 삼성의 변화를 지지하는 방증이 되고 있다. 삼성그룹을 떠난 화학·방위 계열사들도 새 주인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어 이 부회장의 결단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선대와 달리 미국에서 수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조부이자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철학으로 삼은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은 철저히 기업의 본질과 핵심(core)에 중점을 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경쟁력 강화와 주주이익 제고가 그가 이끌 시대의 기본 경영이념이다.
이 같은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 부회장 입장에선 당연하고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일제강점기에 기업을 일군 그의 조부와 세계의 변방인 작은 개발도상국에서 기업을 성장시킨 그의 부친과 달리 그는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그룹의 글로벌 경영을 지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룹의 주축인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은지 이미 오래 전이다.
이 부회장의 '코어 경영'은 지난 2년간 삼성그룹의 변화를 이끈 화두이며 앞으로도 유지될 대원칙이다. 그는 체면이나 권위, 의전 등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삼성그룹이니 '이 정도 계열사는 거느려야 한다', '이 정도 건물은 소유해야 한다' 등의 허례와 겉치레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경쟁력을 잃는다면 삼성전자도 그에겐 매각 대상이 될 수 있다. 어깨에 30만 임직원을 매달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그가 선택했고, 지켜야 할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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