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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눈물의 대관식' 거쳐 리더로 '우뚝' [이건희 와병 2년, 삼성의 변화]①부친 이어 삼성재단 이사장 등극… '최대 격변기' 이끌며 후계자 공인

정호창 기자공개 2016-05-03 08:28:15

[편집자주]

오는 10일이면 삼성그룹 오너이자 최고 경영권자인 이건희 회장이 와병에 들어가 경영에서 손을 뗀 지 만 2년이 된다.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경영체제가 들어선 지 2주년이다. 창업 이래 최대 격변기를 맞고 있는 삼성그룹의 변화와 미래상을 점검해 본다.

이 기사는 2016년 05월 02일 11: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6월 23일 오전,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다목적홀에 집중됐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단상에 초점을 맞췄고 정장 차림의 40대 남성이 등장했다. 그는 90도를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준비한 발표문을 읽어내려 갔다. 발표를 마친 후에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다시 한번 카메라 앞에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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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1991년 입사 후 처음으로 나선 공식 기자회견 자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이 날 삼성전자 부회장 자격으로 카메라 앞에 선 것이 아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운영 주체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단상에 올랐다. 삼성서울병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된 데 따른 대국민 사과를 위한 자리였다.

그는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사과'와 '책임'을 이야기했고, 발표 말미에는 눈물을 내비쳤다. 이 날 그는 대리인을 내세우지 않고 직접 고개를 조아림으로써 '책임지는 리더'의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삼성그룹 내부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그가 삼성의 대표이며 부친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을 책임질 후계자임을 공인받게 된 자리였다. 축포와 박수, 환호성 대신 침묵과 비장함이 가득 찬 '눈물의 대관식'은 그렇게 그의 만 47세 생일날 치러졌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1년 여 전인 2014년 5월 10일 밤, 이건희 회장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심각한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킨 이 회장은 즉시 인근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고 11일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삼성그룹에 있어 가장 긴박했고 길었던 밤이었다.

그룹 총수이자 최고 경영권자의 부재를 맞게 된 삼성그룹은 즉각 이재용 부회장을 그룹 경영의 구심점에 세우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 1938년 고(故) 이병철 초대회장이 일으킨 삼성그룹이 창업 76년 만에 3세 경영시대를 맞게 된 순간이다.

이전까지 이 부회장은 부친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일순위 후계자로 꼽히긴 했으나, 단일 승계권자로 거론되진 않았다. 이 회장이 와병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부회장 뿐 아니라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슬하의 세 자녀 모두에게 편애없는 애정을 드러내며, 경영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고르게 부여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시장에선 삼성그룹의 경영권 '3분할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 회장 세 자녀가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을 소그룹 형태로 묶어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 관측이다. 재계 전문가들은 장남인 이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맡고, 이부진 사장이 서비스·건설·화학 부문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과 광고 계열사 경영을 각각 맡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곧 효력을 잃게 된다. 삼성그룹이 과감한 구조조정과 계열사 매각에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한화·롯데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화학·방위산업 계열사를 정리했고, 그룹의 광고업무를 도맡고 있는 제일기획도 현재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80여 년 가까운 그룹 역사상 '최대 격변기'라는 평가가 나올만큼 지난 2년간 대규모 구조조정 작업이 쉼없이 진행된 결과, 이부진·서현 자매의 몫으로 지목되던 기업 대부분이 삼성그룹 계열사 명단에서 사라졌다. 특히 이 같은 일련의 변화를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했다는 점은 '3분할론'의 설득력을 뿌리째 뽑는 근거가 됐다.

한화그룹과의 빅딜을 단행한 후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말 부친의 뒤를 이어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해당 지위는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리더의 자리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그간 '삼성전자 부회장' 외에는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있지 않던 이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그룹 총수로 내부 추인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그리고 한 달여 뒤 이 부회장은 '메르스 사태' 대국민 사과에 나서, 그가 삼성그룹의 대표이자 리더임을 대외에 공표했다.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이 부회장의 리더 지위를 보전하고 강화했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행태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바로 이 부회장이다. 그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7.23%로 두 여동생 지분율(각각 5.51%)을 크게 앞선다.

부친인 이 회장이 병석에 누워 있는 상황이기에 공식적으로 삼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는 일을 미루고 있지만, 이 부회장의 '단일 승계권자' 지위는 이변을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고하다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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