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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은 어떻게 주식형펀드 '수퍼 판매사'가 됐나 [펀드 판매사 커버리지 분석 / 국민은행] ② 국내 최초 적립식펀드 출시..편견 깨고 펀드판매 '도전장'

박상희 기자공개 2016-11-17 09:53:30

[편집자주]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공모펀드를 판매할 때 어떤 판매사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을까. 지금까지 개별 운용사의 펀드 판매 현황 등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손쉽게 확인되지만 은행이나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와의 실질적인 혹은 숨겨진 비즈니스 관계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더벨은 펀드 판매사 커버리지 분석을 통해 운용사와 판매사 간의 역학관계, 은행 및 증권사 간의 경쟁구도 등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16년 11월 11일 09: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모펀드 판매 파워는 대형은행이 웬만한 증권사를 압도한다. 처음부터 이런 공식이 성립됐던 건 아니다. 은행권에서 펀드 판매가 허용된 1999년부터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은행에서 펀드는 '찬 밥' 신세였다. 원금이 보장되는 예적금을 취급하는 은행에서 금융투자 상품인 펀드를 굳이 팔아야하냐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업계 편견을 깨고 펀드 판매 시장에 가장 먼저 도전한 게 KB국민은행이었다. 적립식펀드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자산운용사에 대한 입지를 강화해나갔다. 국민은행이 치고 나가자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이 뒤따랐다. 운용업계에서는 적립식펀드 판매에 나섰던 순서가 현재 설정액 기준 판매사 순위로 고착화됐다고 본다. 국민은행의 적립식펀드 출시가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 펀드 판매에 냉소적이었던 은행권..고 김정태 국민은행 초대행장 '편견'을 깨다

은행에서 뮤추얼펀드나 수익증권펀드 판매가 허용된 것은 관련 법이 개정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펀드 판매에 적극적인 은행은 거의 없었다. 1999년 시장을 강타했던 '바이코리아펀드'만 하더라도 주력 판매사는 현대증권 등 증권사였지, 은행은 뒤로 빠져있었다.

당시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다 2000년대 중반 A자산운용사 마케팅 부서로 이직한 임원은 "은행에서 펀드 판매가 허용된 초기만 하더라도 수익증권펀드 판매에 굉장히 냉소적인 분위기였다"면서 "펀드를 판매해봐야 어차피 예·적금을 깨고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랫돌 빼서 윗돌 넣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편견을 깨고 펀드 판매에 가장 먼저 뛰어든 게 국민은행이었다. 국민은행과 한국주택은행과의 합병 후 초대 통합은행장으로 취임한 고(故) 김정태 행장이 주도해서 펀드 판매를 강하게 밀어부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행장은 대신증권 상무와 동원증권 사장까지 오르는 등 1998년 주택은행장으로 부임하기 이전까지 20여 년 동안 증권맨으로 활약했다. 증권사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인해 보수적인 정통 은행원보다 펀드라는 금융투자상품에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했다는 후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국민은행에서 펀드 판매 부서를 총괄했던 신재오 전 개인고객그룹 부행장은 "고 김정태 행장이 은행에서 펀드를 주력으로 판매하게 판을 바꾸어야 할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김 전 행장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 준비 차원의 국민 재테크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던데 반해 다수 국민의 자산이 부동산 내지는 예적금에 쏠려있는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저금리가 현실화되면 예적금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낼 수가 없기 때문에 펀드 등 금융투자 상품으로의 분산이 필요하고, 여기에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논리였다.

신재오 전 부행장은 "은행 입장에서도 예대마진 이외의 비이자수익을 낼 필요성이 큰 상황이었다"면서 "추가적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현재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잘만 활용하면 펀드를 팔 수 있기 때문에 펀드 판매를 강력한 피 베이스(수수료 기반) 비즈니스로 키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말했다.

◇ 적립식펀드 국내 첫 선..가장 보편화된 금융상품 자리잡는데 큰 역할

예적금에 익숙한 고객들에게 생소한 펀드를 판매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적립식펀드였다. 2003년부터 여러 자산운용사들과 상품 출시 준비에 들어간 국민은행은 2004년 초 본격적으로 적립식펀드 판매를 개시했다.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주식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아 출시 시기를 뒤로 미뤘다.

신 전 부행장은 "당시 선진국에는 이미 '레귤러 세이빙 프로그램(regular saving program)'이라고 해서 매월 일정 금액을 붓는 연금 상품이 많이 있었는데, 그걸 국내에 적용해서 선보인 게 적립식펀드였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펀드 투자는 1000만~2000만 원 등 큰 몫돈을 한꺼번에 넣는 거치식이 일반적이었다. 그 통념을 깨고 매월 적금을 붓듯이 펀드에 투자하는 상품을 국민은행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이다.

신 전 부행장은 "국민은행이 주택은행과 합병해서 만들어진 회사였기 때문에 고객들이 주택부금 통장 하나씩은 다 갖고 있었다"면서 "한꺼번에 큰 돈을 투자하는 게 아니라 부금을 넣거나 적금을 넣는 것처럼 나눠서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펀드라는 상품에 대한 거리감을 줄였다"고 말했다.

국민은행과 손잡고 적립식펀드를 선보였던 주력 운용사들이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은투신운용(현 KB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랜드마크투신운용(현 ING자산운용),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등이었다. '1억만들기', '3억만들기' 등 적립식펀드 열풍을 주도한 상품이 대거 등장했다.

B자산운용사 관계자는 "1999년 바이코리아펀드가 국내 주식형펀드 산업의 포문을 열었다면 국민은행의 적립식펀드 출시는 펀드가 보다 많은 투자자들에게 알려져 보편화된 금융상품으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C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현재의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생겨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국민은행이 적립식펀드를 출시하면서 펀드 산업을 키운 것이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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