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6월 21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다른 조건이 같으면 채권은 만기에 따라 금리가 달라진다. 그래서 만기라는 가격 변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판단하는 듀레이션(duration) 전략은 채권 운용의 핵심이다. 채권 자산에서 만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그런데 증권사가 신탁을 통해 채권을 운용할 때(혹은 중개할 때) 투자자가 원하는 만기와 다른 채권을 사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투자 자금보다 훨씬 긴 만기의 채권을 사들여 수익을 조금 더 내기 위해서다. 투자자가 원하는 채권 만기와 다른 채권을 샀으니 '계약 위반'일 수 있지만 채권형 신탁 운용의 관례로 여겨지며 투자자들은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여기서 첫번째 의문이 생긴다. 신탁 계약보다 긴 만기 채권 투자로 생기는 이익은 누가 가져갈까. 첫번째 투자자 A 는 시장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익을 챙기면서 관례에 대해 눈을 감아 준다. 하지만 A 투자자가는 채권 만기 차이로 생기는 이익 모두를 가져가지 못한다. 그 나머지 이익은 다음 투자자 B 에게 돌아간다. B 투자자 역시 시장금리보다 조금 높은 금리를 받으면서 관례를 받아들인다.
두번째 의문. 계약 위반 가능성이 높은데 증권사들은 이같은 거래를 외부에 노출시킬까. 당연히 꼼수를 부려야 한다. 신탁 상품을 운용하는 증권사는 감독당국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A 투자자가 자금을 찾아가게 될 즈음 만기가 남은 채권을 다른 증권사에 판 것처럼 위장한다. 그리고 잠시 맡겨 놓은(위장 매도) 채권을 다음 투자자의 자금이 들어오면 맡길 때와 같은 가격으로 되찾아 온다. 흔히 말하는 '연계 자전거래'다.
증권업계에서는 이같은 채권형 신탁의 연계 자전거래 규모를 수십조 원으로 보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일시적인 일탈이라고 보기에는 시장 규모가 너무 크다.
금융감독원은 채권시장의 연계자전거래에 대해 수차례 경고했다. 일부 증권사는 중징계 처벌까지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연계 자전거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증권사가 많다.
그동안 연계 자전거래는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득이 됐다. 신탁 운용 증권사는 고금리를 미끼로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투자자는 시장보다 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거래였다. 모두가 행복한데 왜 감독당국은 이를 막고 나설까.
연계 자전거래는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다른 증권사에 채권을 맡기고 돌려받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이뤄진다. 허술한 감독 규정을 이용,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임의의 가격으로 채권을 거래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관례에 젖어 이해 관계자 대부분이 위법 행위에 대해 둔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위법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또 모두가 다 하는 거래이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반응은 심각할 정도로 모럴해저드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금융환경 변화는 윈윈 구조의 연계 자전거래를 폭탄돌리기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연계 자전거래를 통한 채권형 신탁 운용의 대전제는 금리 하락이다. 저금리 지속, 즉 채권 가격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연계자전거래로 손해보는 쪽이 없었다. 하지만 금리가 반대로 가게 될 경우 모두가 손해를 보는 방식으로 대전환을 하게 된다. 채권 파킹을 둘러싼 법적 책임 공방 뿐 아니라 수십조 원에 달하는 채권 자산이 금융시장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연계 자전거래의 대전제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감독당국도 연계 자전거래를 일개 증권사의 위법 행위로 볼 게 아니라 자본시장 건전성 측면에서 지켜보고 관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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