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12월 14일 17: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계 대주주 일가 가업승계 과정에서 드물게 부자간 주식매매를 통한 지분 이전 사례가 나왔다. 김정돈 미원홀딩스 대표이사 회장과 장남인 김태준 씨의 얘기다.

이들은 그룹 핵심인 지주사 주식을 증여가 아닌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사고 팔았다. 거래 과정에서 증여세를 물지 않고 이보다 부담이 덜한 양도세율을 적용 받는 등 비용 지출을 최소화했다. 오너인 김 회장은 매매거래로 차익도 거머쥐게 됐다.

김 회장은 12월 4일 장 종료 후 시간외 대량매매로 미원홀딩스 주식 10만주를 아들인 태준 씨에게 처분한다. 미원홀딩스 지분 4.29%에 해당하는 주식을 아들에게 팔았다. 주당 매각대금은 4만 6200원이다. 태준 씨는 아버지에게 46억 1000만 원을 지불했다.

표면적으로 특수관계자 사이의 일반적인 주식매매 거래를 띄고 있으나 실체는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가업승계 일환에 가깝다.


미원상사 창업주 3세인 태준 씨는 이번 거래로 지주사인 미원홀딩스 지분율이 2.05%에서 6.34%로 올랐다. 가족 중 부친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갖게 됐다. 그 동안 모친인 정경순 씨(2.56%) 조모인 윤봉화 씨(5.95%), 고모인 명자 씨(2.66%)와 명희 씨(3.7%) 등보다 지분율이 낮았다. 지분율이 역전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소유구도 측면에서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태준 씨는 또 주식 매입을 위해 계열사인 미원화학과 미원상사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등 재원을 마련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거래가 단순 매매가 아니라 중장기간 후계 밑그림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 승계 일환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주식 이전 형태가 증여가 아닌 매매거래 형태를 취한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김 회장 부자는 주식 증여로 인한 세부담을 당장 피할 수 있게 됐다. 태준 씨가 김 회장 주식을 증여 받았다고 가정할 경우 거래 대금의 최대 절반에 해당하는 약 23억 원을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이에 따라 태원 씨는 주식 취득대금 지급을 감수하고 증여세 출혈을 피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식수증과 취득' 어느 쪽이든 계열사 주식 등 보유 자산을 처분해 인수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후자가 훨씬 유리하다.

물론 김 회장 부자는 주식매각에 따른 양도세 부담을 안게 됐다. 대주주 주식 양도세율이 최대 22%인 점을 감안하면 증여세에 비해 부담이 덜하다. 게다가 김 회장에게 유입된 주식 매각대금을 감안하면 당장 서로가 남는 거래가 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거래가 가능한 배경에는 미원홀딩스의 낮은 주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미원홀딩스는 시가총액이 1064억 원으로 발행주식이 약 233만주다. 14일 현재 주당 종가가 4만 5650원으로 미원화학(6만 1300원), 미원상사(22만 9500원) 등과 현저히 격차가 벌어진다. 주식 매입 부담이 한결 덜한 셈이다.

지난해 인적분할을 단행해 미원홀딩스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지위를 취득했으나 계열사를 완전 장악하지 못했다. 그룹 주력인 미원상사와 수평적 지배구조를 이루면서 중간지주사로 머물러 있다. 추가로 계열사를 흡수합병할 경우 지배정점으로 올라설 수 있지만 이 경우 기업가치가 올라 태준 씨의 지주사 지분 인수 부담이 가중된다. 결국 제한적으로 자회사인 미원에스씨 주식을 꾸준히 매입하는 수준에서 계열사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룹 내 중간지주사 유지는 태준 씨 중심의 승계를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바꾸어 생각하면 단기간에 미원홀딩스의 서열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태준 씨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미원홀딩스 주식을 매입 중이다. 보유 중인 현금 등을 감안하면 최대 10% 이상 지분율 확보가 가능하다. 오너 3세 지분율이 일정궤도에 오른 시점에 미원홀딩스의 지위도 격상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