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8월 02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미국 작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속 문구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며 노동에서의 소외가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소비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소비에서의 소외가 주요한 문제가 된다. 현대인이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로 불리는 이유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은 현대인의 주요 소비공간이다. 백화점은 프리미엄, 마트는 가격, 편의점은 편리성을 내세운다. 이 가운데 편의점은 하루 중 언제라도, 한낮이 됐든 한밤 중이든 필요로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소비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소설가 김애란이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묘사했듯 편의점은 누구나 평범한 소비자가 될수 있는 친밀한 공간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편의점이 친근한 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명예퇴직이 일상어로 자리잡은 이래 편의점은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랜차이즈 업종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주변의 누군가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손쉽게 떠올리는 업종이 치킨집 아니면 편의점인 시대다.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편의점을 창업하면 월급을 받던 피고용인 입장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가 된다. 얼핏 자본가로 승격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편의점 점주들은 기업인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높은 임대료, 영업규제 등 애로사항에 발이 묶인 소상공인일 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의결한 이후 편의점 점주 등을 포함한 소상공인연합회가 불복종 선언에 나섰다. 한국 편의점 점포수는 일본의 70%, 매출액은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과 비교하면 인구 대비 점포 수는 과잉이고, 매출 규모는 영세하다. 2년 연속 두 자릿 수 임금 인상이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 편의점주들은 편의점 본사에 내는 가맹수수료 인하, 근접출점 중단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 본사에 대해 불공정거래 관련 현장 조사에 나서는 등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결정 후폭풍을 편의점 본사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코리아세븐 등 대부분의 편의점 업체가 2017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에서 양호 등급 이상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공정위의 현장 조사는 자충수다.

이론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에 지출할 수 있는 가용소득을 늘려 내수경제를 촉진한다. 그런데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아르바이트생은 일자리가 줄어들까 걱정이고, 편의점주는 심각하게 폐업을 고민한다. 편의점 본사는 가맹수수료 인하 요구로 번진 불똥에 수익구조 근간이 흔들릴까 노심초사다. 적자전환 위기감도 팽배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소비하는 현대인, 그 누구도 맘 편히 웃을 수 없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