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6월 03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포드는 금융위기 때 자동차 3사 중 유일하게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은 회사다. 2008년 11월 17일 자동차 3사 의회청문회에서 포드는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동시에 경쟁사인 GM과 크라이슬러가 도산하면 포드도 무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정부가 GM과 크라이슬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미국 전역으로부터 감사와 격려 편지가 회사로 쏟아져 들어왔다. 많은 미국 국민이 포드를 지원하는 의미에서 새로 포드차를 구입하기도 했다.
금융위기 때 포드를 위기에서 건져낸 CEO는 앨런 멀러리(Alan Mulally)다. 보잉사 상용기 부문 사장을 지낸 사람인데 911때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911때 항공기제조 회사를 살려낸 사람이 에너지 위기에서 자동차 회사 못 살리겠느냐는 기대로 영입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고 본인은 911때 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빴다고 회고한다.
멀러리는 캔사스대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하고 MIT에서 MBA를 한 후 보잉에 입사, 평생을 보잉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2006년에 포드에 영입되었다. 당시 CEO였던 헨리 포드의 증손자 빌 포드(William Clay Ford, Jr.)는 멀러리를 영입하면서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했다. 포드에서는 창사 이후 전문경영자가 포드가문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 일이 두 번 있었다. 아이아코카(Lee Iacocca)와 나세르(Jacques Nasser)다. 멀러리는 그런 일을 일으키지 않았다.
포드는 2006년에 창사 이래 최악인 127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포드는 회사의 전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차입을 감행했다. 포드의 신용등급은 2005년 이래 정크본드급이었다. 씨티, JP모간, 골드만 삭스가 동원되었다.
|
2009년에 포드는 27억 달러 순익을 기록했다. 자체적인 노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도요타의 불행이 포드에게 반사적 이익이 되었다. 2009년 8월 28일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원 한 사람이 가족을 태우고 달리던 렉서스가 브레이크를 밟자 가속되어서 180킬로 속도로 달리다 전 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이 911에 구조를 요청하는 녹음이 언론에 공개되었고 도요타는 420만 대를 리콜했다.
도요타는 사건 대응도 잘못했고 추가적인 문제가 드러나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당해 사고의 원인은 바닥 매트가 엑셀에 끼어 발생했지만 일부 차량의 경우 기계적 결함으로 엑셀이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도요타 차주들은 패닉에 빠졌다.
2010년 1월에 공개된 컴팩트카 3세대 포커스(Focus)가 ‘원 포드(One Ford)' 전략을 내세운 머랄리 회심의 역작이었다. 포커스는 이제 2013년에 총 3천만 대를 돌파한 폭스바겐 골프(Golf)의 큰 라이벌이다. 포드의 미국시장 매출이 24% 상승했고 2월에는 무려 43%가 올랐다. 주가도 2005년 이래 최고였다.
빚도 차근차근 다 갚아나갔고 4만3천 명의 UAW 조합원 종업원들에게는 1인당 450달러를 지불했다. 대리점들의 수익도 전년 대비 15배 올랐다. 머랄리는 1800만 달러 연봉을 받았고 5년 동안이나 회사에서 한 푼도 받지 않았던 빌 포드도 1400만 달러 보수를 받았다. 그 중 백만 달러는 즉시 종업원 자녀 장학금으로 기부되었다.
머랄리와 포드의 금융위기 극복과정은 브라이스 호프만이 쓴 ‘American Icon (2012)'이라는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머랄리는 2014년에 포드를 떠나 알파벳의 사외이사로 옮겼고 트럼프 대통령의 국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