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살롱 Brief]글로벌 M&A에서 얻은 신약 힌트…1.5조 딜로 결실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노하우 전수…"전략과 데이터로 베링거잉겔하임 협상주도"
서은내 기자공개 2019-07-25 08:21:08
[편집자주]
대전, 판교, 오송, 송도 등 제약바이오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혁신신약살롱이 한창이다. 살롱은 신약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아고라'로 기능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교환되고, 실제로 현실화되기도 한다. 더벨은 살롱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담론에 귀기울여 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7월 24일 15: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명도 채 안되는 임직원이 근무하는 작은 바이오 벤처가 2년만에 200억원 짜리 신약 후보물질을 1조5000억원짜리로 키워냈다. 신약 물질에 대한 원천 기술이 없다며 한국거래소에 상장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던 회사다. 우연의 산물일까, 아니면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었을까.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전략'이라고 단언했다. 신약 물질을 도입하는 과정부터 이를 개발하고 글로벌 빅파마와 협상을 벌이는 과정 하나 하나를 전략과 데이터로 무장했다. 한국 바이오 벤처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참고할 만한 노하우들이다.
이정규 대표는 지난 23일 판교 살롱에서 BD(사업개발) 전문가로서 노하우를 쏟아냈다. 판교 삼양디스커버리센터에서 열린 바이오 살롱에선 수 많은 참석자들이 이 대표의 노하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브릿지바이오는 2년 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200억원(총 기술수출료)에 도입한 물질을 개발, 부가가치를 입혀 1조4600억원(총 기술수출료)에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인 BBT-877은 2년만에 73배의 가치로 훌쩍 자랐다.
◇빅파마 관심사 파악해 물질 도입, 경쟁사 발맞춰 빠른 개발 전략 수정
이정규 대표는 이번 기술이전이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계획된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처음 물질을 도입해올 때부터 전략을 세웠다.
섬유증 관련 물질에 관심을 두고 있던 이정규 대표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관심 동향을 파악하며 신약 물질을 검토했다. 이 대표는 "2010년대 중반부터 BMS, 노바티스, 길리어드 등이 섬유증과 관련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하며 섬유화를 관할하는 효소인 오토택신 관련 약물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고 마침 BMS가 관련 업체를 인수했다"며 "오토택신 계열 물질 중 개발 속도상 3번째 후보물질까지는 빅파마에 기술이전이 가능하리라 예측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BMS의 M&A를 보며 레고켐의 신약 물질을 주목했다. 마침 레고켐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브릿지바이오가 해당 기술을 도입했다.
경쟁사 동향을 보며 적확한 시점에 빅파마에 접촉한 건 그 다음이다. 벨기에의 갈라파고스제약이 같은 분야에서 임상1상을 진행하며 빠른 행보를 보이던 시기였다. 브릿지바이오가 임상 2상을 잘 구성한다면 신약 승인(NDA) 시점 정도에 맞붙을 수 있겠다고 내다봤다. 브릿지바이오는 임상 2a상을 마친 후 라이선스아웃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갈라파고스가 2b상을 생략하고 바로 임상3상에 진입하면서 임상1상 중 기술이전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이 대표는 "경쟁사와 개발 속도가 너무 크게 벌어지면 임상 환자 모집이 어려워질 수 있어 보다 빠르게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글로벌빅파마에 기술이전을 서둘렀다"며 "협상 상대 기업에는 만일 딜 성사가 안돼도 임상 2상 진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원하는 수준의 데이터가 나오면 딜을 클로징하는 것으로 전략을 짰다"고 말했다.
전문 서비스를 아웃소싱한 것도 빠른 성과에 한몫 했다. 미국과 유럽에 있는 업체들과의 협상을 한꺼번에 컨트롤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사를직접 하기란 불가능했다. 글로벌 업체와 계약, 커뮤니케이션 매니지 경험이 많은 해외 전문 컨설팅 그룹을 활용해 협상 팀을 구성했다. 서비스 댓가를 감내함으로써 수십배의 효익을 얻었다.
◇협상 초기부터 빅파마에 권리분배·요구조건·스케쥴까지 세부사항 의사 표시
협상 과정에선 철저한 실행 계획이 뒤따랐다. 빅파마와 첫미팅부터가 시작이다. 이 대표는 벤처들이 자주 실수하는 부분으로 회사의 분명한 요구사항과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보통 첫 미팅에서 우리 회사는 아주 작은 업체이니 상대가 알아서 요리해달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그 순간 회사 포지션은 뚝 떨어진다"며 "딜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모른다는 건 상대가 주무르는대로 싼 가격에 기술을 넘기겠다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브릿지바이오는 초기부터 딜 프로세스 패키지 파일을 만들어 파트너에게 보냈다. 판권 분배, 추가 적응증의 자사 개발 권리, 재무적인 주요 상황 등 세세한 요구 목록과 딜을 통해 추구하는 브릿지바이오 성장 방향까지 적시했다. 또 아시아와 중국 지역의 권리는 직접 개발하겠다는 요구 사항을 덧붙이기도 했다.
타임라인 표시도 중요하다. 6월 말까지 딜 클로징 기한을 주고 상대 회사를 밀어붙였다. 이 대표는 "빅파마 입장에서 코웃음을 칠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협상을 시작 전 우리 목적을 분명히 하고 협의를 진행해야한다"며 "우리 회사 주주들에게 맞춰줘야 하는 일정이 있고 스케쥴에 맞춰 딜이 진행돼야한다는 것을 표현한다면 상대도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딜의 가격을 높이는 것 보다 무게를 둔 지점은 우리 파이프라인을 제대로 키울 상대를 찾는 일이다. 브릿지바이오와 최종 계약을 체결한 건 베링거인겔하임이지만 막판까지 복수 업체와의 협상을 동시에 끌고 갔다. 베링거인겔하임은 특발성 폐섬유증 시장의 리더업체다. 관련 매출이 10억달러에 달한다. 그런만큼 해당 물질의 이해도가 높다. 브릿지바이오가 의학 자문단과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마다 십중팔구 베링거인겔하임이 언급됐다.
브릿지바이오의 자신감을 뒷받침한 것은 준비된 과학적 데이터였다. 이 대표는 "브릿지바이오의 과학 자문단(SAB) 등을 통해 상대 회사에서 궁금해할 만한 답변 데이터를 확실히 준비했다. 아무리 딜을 서둘러도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돼야 협상 지속이 가능하다"며 "데이터 대응이 가능한 시점에 본 협상에 들어가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시리즈C 자금 조달도 힘을 보탰다고 덧붙였다. 협상 중 경쟁사의 개발 소식을 접할때마다 스트레스가 컸다. 자금 유치는 심리전에서의 승리를 도왔다. 계약 체결 막바지였던 올초 브릿지바이오는 310억원을 조달했다. 이 대표는 "협상 때 자금이 없으면 조마조마하다. 이번 딜이 깨져도 직접 임상을 끌고 가겠다는 모습은 상대 회사에 자신감 넘치는 시그널을 주게 된다"고 전했다.
브릿지바이오의 관심은 또다시 제 2의 기술이전을 향하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올 연말부터 내년 초 사이 401파이프라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176 폐암치료제는 연말까지 한미 동시 IND에 들어가야 해서 쉴틈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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