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중앙회 통합전산망, 개별전산망보다 돈 더 쓰네 [성장하는 저축은행, 정체된 중앙회] ②67개사 공동 이용...자체상품 구축 지연, 중복투자 비용지출 부담
이장준 기자공개 2019-08-22 09:03:22
[편집자주]
저축은행의 이익을 대변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출범한 저축은행중앙회가 다른 업권에 비해 제 역할을 충분히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저축은행 업계가 고속성장을 하는 것과는 달리 내실을 다지기 위한 협회의 지원이나 중장기적인 비전은 부족하다는 평이다. 더벨은 예탁금, 전산망, 싱크탱크 등 부문에서 저축은행중앙회의 문제점을 짚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19년 08월 13일 15: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저축은행은 제2금융권에서 유일하게 통합 전산망을 사용한다. 과거 저축은행 전산조작 사건 이후 금융당국이 저축은행들에 중앙회 통합 전산망을 쓰도록 권고하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확대됐다. 중앙회 인력의 절반 이상이 전산 업무를 담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하지만 말 그대로 통합 전산망이다 보니 개별 저축은행의 특성을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초에는 20년 만에 차세대 통합금융정보시스템(IFIS)을 도입하며 전반을 손봤지만, 여전히 자체 상품 구축 등에 한계를 갖고 있다.
◇금융사고 방지 차 통합전산망 권고…67개사 만족시켜야 하는 '딜레마'
현재 저축은행중앙회 통합 전산망을 사용하는 회원사는 67개사다. 자체적으로 전산망을 구축하거나 금융지주 계열인 12개사를 제외한 모든 저축은행이 쓰는 것이다.
통합 전산망은 1999년 처음 구축됐다. 본격적으로 저축은행들이 이를 사용하게 된 건 지난 2012년 저축은행 전산조작 사건 이후다.
당시 일부 저축은행들이 전산을 조작해 고객 예금을 빼돌리거나 이중장부를 만들었다. 당국은 이같은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저축은행에 중앙회 통합 전산망 사용을 권고, 일괄 관리에 나섰다. 이미 자체 전산망을 보유하거나 개발중인 곳을 제외한 모든 저축은행이 통합 전산망을 이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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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전산망은 67개 회원사를 타깃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자산 규모가 5000억원 미만인 지방 소규모 저축은행들은 전산실을 따로 운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체 전산을 구축하고 관리하려면 최소 10명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소형사가 관련 인력과 시스템, 비용을 감당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형사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 전산망은 각 저축은행들이 내는 전산업무비를 바탕으로 운영하는데 대형사가 비교적 큰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대형사가 자체 전산망을 구축해 이탈할 경우 남아있는 소형사가 지게 되는 부담이 커진다. 전산망을 쓰는 67개사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특정 저축은행에 초점을 맞춰 전산망을 구축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합 전산망을 쓰는 저축은행은 서비스 다양화 측면에서 자체 전산망을 쓰는 은행보다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자체 전산망을 쓰면 서비스나 UI를 해당 저축은행에 꼭 맞게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바일 풀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더라도 통합 전산망에 맞추다 보면 개발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중앙회에서 전산망 서버를 바꾸거나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고객 입장에서도 통합 전산망을 쓰는 저축은행의 앱을 이용할 경우 불편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독립 전산망을 쓰는 경우 앱 속도가 빠르고 기능도 많다"며 "통합 전산망을 쓰는 저축은행이 앱을 개발해도 고객 입장에서 이자 납입이나 수신 신규 등 서비스는 중앙회 앱을 통해야 해 번거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차세대시스템 이후에도 자체 상품 구축 어려워…'이기종' 서비스 등 중복 투자도
중앙회 인력 중에서 70~80명이 IT본부에 소속돼 전산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최근에는 신용채 전 국민카드 IT본부장(CISO)을 중앙회 IT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저축은행 영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IT 지원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2월 노후화된 통합 전산망을 고도화한 차세대 통합금융정보시스템(IFIS)을 도입했다. 전산망 구축 이후 약 20년 만이다. 그러나 IFIS 도입 2개월 만에 저축은행 12곳에서 예금이자가 과다 지급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 저축은행은 일일이 고객들에게 유선과 서면으로 연락해 추가 지급분을 회수해야 했다. 이 때문에 중앙회는 올 들어 67억원을 추가로 들여 IFIS를 유지·보수하기로 했다.
IFIS를 도입함에 따라 소프트웨어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자체 상품 구축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신규 여신 상품을 만들 때 회원사는 빨리 상품을 설계하고 앱에서 구현되기를 바라지만 중앙회는 모든 저축은행에 부합하는지를 먼저 고려해 개발을 진행하는 만큼 출시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여전히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변경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복 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회가 지원하기 어려운 서비스의 경우 개별 저축은행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해 '이기종'이라는 서비스가 생겼다. 이기종은 개별 저축은행이 구축한 별도 신용대출 시스템을 중앙회 시스템과 연동해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회 전산과 별개로 이기종 장비를 마련하고 관리하면서 추가 비용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통합 전산망을 쓰는 저축은행의 전산업무비가 자체 전산망을 사용하는 저축은행보다 많이 나올 때도 있다. 자체 전산망을 구축한 SBI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기준 판관비 가운데 전산업무비는 16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통합 전산망을 쓰는 OK저축은행은 31억원의 전산업무비를 지출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일부 저축은행들은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자체 전산망을 도입하려고 하지만 중앙회 눈치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통합 전산망 특성상 한 군데를 손보면 전체를 바꿔야 하는 만큼 회원사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 최적화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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