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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상사 자원개발업 점검]'최초'였으나 '최고' 아니었던 현대종합상사1979년 호주 석탄 개발 참여…경영난 탓 투자집중 실패

김성진 기자공개 2019-10-16 09:21:34

[편집자주]

'무역에서 에너지로'는 2000년대 중후반 국내 종합상사들의 공통된 캐치프레이즈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자원개발을 국가적 사업으로 여기고 세계 각지의 석유·석탄·가스·식량자원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가 진행됐다. 그러나 실패가 더 많았다. 수조원의 투자금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구조조정을 거쳐 자원개발 사업장의 옥석가리기가 진행됐다. 지금은 어느덧 살아남은 사업장이 하나 둘 생겨나 각 종합상사들의 캐시카우가 되는 반전의 상황이 나오고 있다. 종합상사들의 자원개발 사업 과거와 현재를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 15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종합상사들 중 가장 처음 자원개발 사업 포문을 열었던 업체는 바로 현대종합상사다. 1970년대 말 단순 중개무역 대신 원자재를 직접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호주 드레이튼 유연탄광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스크가 높은 자원개발 사업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음에도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현대종합상사는 당시 삼성과 대우 등 경쟁사와의 경합을 벌인 끝에 주관사 '쉘'의 파트너사로 선정됐고 오랜 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현대종합상사는 최초의 역사를 최고의 역사로 연결시키진 못했다. 호주 드레이튼 탄광 이후에도 다른 자원개발 사업들을 추진했으나 투자 규모가 크지 않았고 연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2000년 현대그룹에서 경영권 승계를 놓고 발생한 일명 '왕자의 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하며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들이 찢어졌고, 이 과정에서 재무상태 악화까지 겹쳐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가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후반 다른 종합상사들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정책에 힘입어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는 상황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자원개발 전문업체를 설립하며 추격에 나섰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현재 현대종합상사가 영위하는 자원개발 사업은 단 네 곳 뿐이다.

◇2003년 경영권 채권단 넘어가…자원개발 투자 소극적

1979년 현대종합상사는 호주 드레이튼 유연탄광 개발 사업에 2.5%의 지분을 투자하며 본격적으로 자원개발 사업에 나섰다. 당시 호주 드레이튼광 개발은 이미 국내 한국전력과 20년 동안 연간 50만톤의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있어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이는 반대로 국내 석탄수급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1984년 한국석유공사, SK, 삼환기업 등과 함께 예멘 마리브 유전에 투자해 석유자원 발굴에도 뛰어들었다.

1990년대에도 투자는 계속됐다. 자원개발 사업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투자했다. 1992년 5월에는 베트남 11-2 가스전(PNG) 개발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했으며, 1998년에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예멘 액화천연가스(LNG)개발사업에 투자했다. 1999년 11월 카타르 라스라판 LNG 생산광구 투자도 컨소시엄을 통해 이뤄졌다. 이처럼 연속된 자원개발 사업 투자는 당시 다른 종합상사들과 비교해서도 많은 수준이었다.

국내 종합상사들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자원개발 사업에 투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자원개발 사업에 나섰던 현대종합상사는 오히려 투자 러시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다. 바로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에서 경영권 승계 다툼이 벌어지자 현대그룹은 크게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으로 나뉘었고, 각 계열사들 역시 계열분리가 시작됐다. 이 시기 현대종합상사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으로 잇따라 바뀌었다.

특히 2003년 경영난을 겪으며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간 영향이 컸다. 현대종합상사는 당시 해외법인 부실 탓에 유동성 위기를 겪어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주요 주주였던 산업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등은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느라 리스크가 높은 투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실제로 2000년대 현대종합상사가 자원개발 사업에 투자한 주요 사례는 한국가스공사와의 합작이 사실상 전부였다. 지난 2005년 예맨 LNG프로젝트 총사업비가 계속 늘어나자 현대종합상사는 한국가스공사와 개발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결정했다. 대신 현대종합상사는 한국가스공사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제공받기로 합의했다. 현대종합상사는 한국가스공사와 예맨 LNG 주주사 역할을 하는 HYLNG법인을 세웠다. 현대종합상사가 지분 51%, 한국가스공사가 49%를 가져가는 구조였다.

◇워크아웃 졸업 후 자원개발 전문업체 설립…5년만 실패

2009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현대종합상사는 이듬해인 2010년 현대중공업 품에 안겼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종합상사 지분 50%+1주를 2351억원에 인수했다. 현대종합상사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간 지 약 6년 만에 다시 범(凡) 현대가 기업에 편입됐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를 국가적 사업으로 여기고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던 시기로, 그동안 재무상태 악화로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현대종합상사도 다시 자원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셈이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 보유 지분 2%를 인수했다. 현대중공업이 1.5%, 현대종합상사가 0.5%를 취득하는 구조였다. 암바토비 니켈광산 프로젝트는 광물공사가 2006년 10월 국내 7개 기업과 컨소시엄 형태로 1조9000억원(지분 27.5%)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한 사업이었다. 다만 당초 2010년에 생산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사업이 계속해서 차질을 빚었다. 이 때문에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중공업은 2013년 풋옵션을 행사해 니켈광산 지분을 처분했다.

또 조직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대종합상사는 농업과 산림자원업, 바이오연료 등 신사업 진출을 위해 현대중공업에서 '바이오자원팀'을 이전받았다. 삼성물산, LG상사,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국내 종합상사들이 당시 식량사업에 진출했던 점을 벤치마킹한 전략이었다. 현대종합상사는 이와 함께 친환경 곡물 생산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의 1만㏊ 규모의 영농법인도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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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현대중공업 편입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자원개발 전문업체를 설립한 것이다. 2011년 현대중공업은 계열사마다 산발적으로 추진되는 자원개발 사업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원개발 전문업체 '현대자원개발'을 설립했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오일뱅크, 현대종합상사가 500억원을 출자해 공동으로 만들었고 현대종합상사는 지분 10%를 투자했다.

그러나 자원개발 전문업체 도전 결과는 처참했다. 기존 현대종합상사가 영위하던 예멘·오만·카타르의 LNG, 베트남 유전, 러시아 농장 지분을 보유한 데 따른 배당금과 관리 수익 등이 사실상 매출의 전부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매출은 10억~30억원 수준에 머무른 반면, 영업손실이 지속되며 적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러시아 서부 캄차카 유전 등에서 실패한 영향이 컸다. 결국 현대종합상사는 2016년 '현대자원개발'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미미해진 자원개발 사업 실적…매출비중 0.7%

최초로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던 현대종합상사의 현재는 다소 초라한 모습이다. 현대종합상사가 영위하고 있는 자원개발 사업은 모두 1990년대 투자가 이뤄졌던 사업들로 베트남 11-2 가스, 오만 LNG, 예맨LNG, 카타르LNG 사업 등이 전부다.

현대종합상사의 자원개발 실적은 2016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악화하기 시작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지분법이익 및 배당금을 통해 350억원 수준의 순이익을 거뒀으나 이후부터 이익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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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새로운 투자도 없었다. 현대종합상사도 자원개발 대신 산업플랜트, 차량소재, 철강 등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가 발표하는 사업보고서에는 몇 해 전부터 자원개발 항목이 아예 자취를 감추고 기타항목에 편입됐다. 기타항목의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7%에 불과하다. 영업손익도 4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석유, 석탄, 가스 등 전통적인 자원개발 사업은 리스크가 크고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시황이 안 좋은 현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고 새롭게 투자 중인 사업은 없다"며 "지금 당장 큰 수익이 나진 않지만 태양광발전사업과 식량자원 개발 사업들을 천천히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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