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O 워치]한국조선해양, 부채비율 속 선수금의 비밀10년 간 6배 축소, 재무구조 개선 '착시효과'…투자 전략 운신 폭 좁아져
구태우 기자공개 2020-02-27 10:15:50
이 기사는 2020년 02월 26일 15: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선업의 부채에는 '허수'가 있다. 이 부채 항목들은 실제 갚아야 할 돈도 아니고 미래 현금유출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회계상 부채로 인식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이 부채 항목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채비율이 높아진다.이 부채 항목들이 단순히 부채규모의 변동 흐름을 나타내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시장은 부채비율로 재무 건전성을 측정한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옥죄는 수단으로 작용한 사례도 있다. 정부는 2015년 조선업 수주 절벽 이후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소에 인력 및 설비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이때 구조조정 명분을 제공한 건 부채비율이었다.
이렇듯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개선해야 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허수 부채'는 '눈엣가시' 일 때도 있다. 반면 사업이 호황기일 때에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공헌해 긍정적인 점도 있다. '두 얼굴'을 한 부채인 셈이다.
조선업체 재무상태표에서 허수로 분류되는 부채는 선수금과 초과청구공사(계약부채)다. 이들은 선박 계약을 수주하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항목이다. 이들 항목은 선박을 인도하면 자연 소멸된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부채로 인식된다.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은 지난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통해 지난해 재무상태표를 공개했다. 연결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의 선수금은 1721억원으로 집계돼 최근 10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2010년 선수금은 1조원에 육박했는데, 6배 이상 규모가 줄었다.
선수금은 조선업과 건설업 등 공사 수주 후 인도까지 장기간 걸리는 산업에서 활용한다. 조선업은 공사 총액의 10~20%를 계약 직후 선수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선박 인도 후 받는 '헤비 테일' 방식을 사용한다. 한국조선해양은 통상적으로 공사 금액의 10%를 선수금으로 받는다.
선수금은 영업부채의 일종으로 영업활동으로 발생한 부채이다. 매입채무 또는 미지급금 등이 영업부채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선수금은 조선사의 경영 환경을 유추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한국조선해양의 선수금이 줄어든 건 2015년부터 시작된 수주 절벽 때문이다. 2015년 신조 발주가 급감했고, 이후 선박 발주량은 감소세가 이어졌다. LNG선을 중심으로 신조 발주가 이어졌지만 전체 '파이'는 작아졌다. 수주 기준 글로벌 1위인 한국조선해양의 수주총액(수주총액 = 전기 이월 수주잔고+당기 수주총액)도 과거 100조원대에서 30조원대로 축소됐다.
일감이 줄어든 만큼 재무구조도 개선됐을까. 선수금과 부채총계 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만큼 재무구조는 개선됐다. 2010년 부채비율은 200%에 육박했는데, 지난해에는 93.6%로 낮아졌다.
이는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015년 이후 차입금을 대거 상환했다. 16조원을 넘던 총차입금은 4조원으로 줄었다. 계약부채(초과청구공사)는 같은 기간 6조원에서 3조원으로, 선수금은 약 5000억원에서 1721억원으로 감소했다. △총차입금 △계약부채(초과청구공사) △선수금 등 3가지가 줄면서 전체 부채 규모는 작아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착시 효과'가 반영됐다. 계약부채인 초과청구공사와 선수금은 부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부채비율은 부채총액을 자본총액으로 나눠 계산한다. 즉 선수금 등 영업부채를 차감하지 않고 부채비율을 산정하는 셈이다.
이에 대한 배경은 이렇다. 회계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통상적으로 조선업계를 제외하면 영업부채(선수금 등)의 규모가 크지 않다. 조선소는 수주 계약에 따라 선수금을 받았고, 선박을 인도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만큼 부채로 인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조선해양 CFO는 최근 5년 동안 재무구조가 개선되면서 한시름 놓았을 수도 있다. 반면 선수금의 감소는 유동성과 영업이익률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다. 선사에서 받는 선수금을 활용하면 회사 재원을 투입하지 않고도 영업이익을 늘릴 수 있다. 선수금을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이자수익 또는 배당금을 얻을 수 있다. 선수금을 1000억원을 쌓았을 때보다 1조원을 쌓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지렛대 효과(레버리지)'는 다르다.
한국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 이면에는 조선업의 쇠태로 인한 자연적인 결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선수금 규모가 이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든 것 역시 달라진 조선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증표다. 선수금의 규모가 줄어들어 레버리지로 활용하기조차 어렵다는 게 시장의 설명이다.
한국조선해양의 CFO는 조영철 재경본부장(부사장)이다. 조 부사장은 198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그룹 내에서 줄곧 재무 및 경영관리 업무를 맡았다. CFO는 가용 자산을 활용해 금융상품 등에 투자하는 전략을 짠다. 조선업 시장 전체가 이전보다 축소되면서 CFO의 '운신의 폭'도 이전보다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의 부채비율을 부채가 많은 것으로 단순 해석하면 재무구조를 오독할 수 있다"며 "부채비율이 줄어든 이면에는 조선사의 수주 상황이 나빠진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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