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업 리포트]마케팅 꽂힌 디자이너, '배달앱 전성시대' 열다우아한형제들, 이색 마케팅으로 10년만에 5조 기업 성장
서하나 기자공개 2020-04-03 08:18:50
[편집자주]
플랫폼(Platform)이란 본래 기차 정거장을 뜻하는 용어다. 현재는 많은 이용자가 이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모바일 앱, 웹사이트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더욱 널리 쓰인다. 구글, 애플,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은 이미 일상 곳곳으로 침투한 지 오래다. 방송, 교육, 웹툰, 웹소설 등 콘텐츠 플랫폼과 배달, 운송 서비스 등으로 삶으로 스며든 각 분야 대표 플랫폼 기업의 현황 및 사업에 대해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4월 02일 08: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우아한형제들'은 김봉진 대표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김 대표가 골목길을 누비며 주운 전단을 모바일 앱으로 옮긴 것이 '배달의민족' 서비스의 시초였다. 네오위즈, NHN 출신 디자이너인 김 대표는 "마케팅에 2등은 없다"는 신념으로 배달의민족만의 이색 마케팅을 펼쳤다. 단숨에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우아한형제들은 꾸준히 성장했다. 기업가치 1조원 '유니콘' 기업 반열에도 올랐다. 지난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지분 87%를 매각할 당시 기업가치는 4조7000억원(40억달러)에 이르렀다.
◇공고출신 디자이너가 발견한 '배달시장' 잠재력
1976년생인 김봉진 대표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고3 때 뒤늦게 미술에 빠지면서 서울예술전문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를 선택했다. 졸업 이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이모션, 네오위즈, NHN(현 네이버) 등 기업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잘나가는 웹디자이너였지만 정작 김봉진 대표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해외에서 스마트폰이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도입된 2009년 본격적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스마트폰용 앱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방대한 전화번호를 모으기 힘든 데다 시장성이 없어 실패했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살피기 시작했다. '배달업'은 전화를 매개로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업종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막대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었지만 여전히 '종이 전단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김 대표는 직접 골목을 누비며 음식점 전단을 주웠다. 여기서 얻은 정보를 스캐너를 이용해 모바일 앱으로 옮겼다. 초기 배달의민족 서비스는 모바일에 배달음식 정보를 모아둔 버전에 불과했다. 여기에 디자이너로서 감각을 활용해 편리한 이용자 경험(UI)·이용자 환경(UX)을 구축하고, 여러 서비스를 접목하면서 서비스를 키워갔다.
김 대표는 우아한형제들 창업 당시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다. 초창기부터 서비스의 가치를 알아본 엔젤투자팀 '본엔젤스'의 도움으로 2010년 6월 배달의민족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다. 앱 출시와 동시에 앱스토어 1위에 올랐다. 배달시장 대격변의 시작이었다.
◇마케팅에 2등은 없다
창업 시절 김 대표는 이미 10년 가까이 웹디자이너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마케팅에 2등은 없다"는 신념으로 배달의민족을 'B급 문화를 가진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고, 10~20대의 젊은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고기 맛이 고기서 고기지', '다이어트는 포샵으로', '국은 물보다 진하다' 등 기상천외한 카피로 젊은 층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젤 이뻐'라는 옥외광고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TV 광고는 배달의민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의 대표작이다.
2012년에는 자체 개발한 서체 '한나체'를 처음 출시한 뒤 주아체, 도현체 등 8종의 폰트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김봉진 대표를 두고 "디자인 경영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디자인 경영은 조직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의사 결정을 할 때 시장상황과 고객 중심적인 방법으로 최적화해 접근하는 방법을 뜻한다.
김 대표는 우아한형제들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구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사내문화 구축했다. '9시1분은 9시가 아니다' 등 성실함을 강조하는 규칙과 '보고는 상급자가 하급자 테이블에 가서 듣는다',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망한다' 등이 11가지 방법에 포함됐다.
◇앞으로 10년, 또 다시 김봉진 대표 손에
우아한형제들은 2018년 반찬배달 서비스 '우아한신선들' 매각이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우아한신선들은 새벽에 반찬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100% 자회사다. 하지만 새벽배송 경쟁이 심화하면서 손실이 지속되자 결국 매각을 결정했다. 우아한신선들은 2017년 영업적자 125억원을 냈다.
하지만 본업은 승승장구했다. 창업 10년차를 맞는 동안 배달앱 시장 규모는 2013년 3347억원에서 2018년 3조원, 지난해 5조원 이상(추정) 등으로 커졌다. 배달앱 시장 점유율 1위인 우아한형제들 역시 앱 누적 다운로드 수 4000만건, 월간 순 방문자수 900만명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우아한형제들은 기업가치 1조원을 넘기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될 당시 기업가치는 무려 4조7500억원(40억달러)로 커졌다.
우아한형제들의 매각을 두고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어떤 이들은 '게르만의 민족'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김봉진 대표는 엑시트(EXIT) 이후 더 큰 모험을 택했다. 딜리버리히어로와 함께 싱가포르에 세운 합작사(JV) '우아DH아시아'의 회장을 맡아 아시아 11개국 사업을 총괄하기로 했다. 지난해 연말을 뜨겁게 달군 '빅딜'이 단순히 해외기업이 국내 배달앱 시장을 집어삼킨 사례로 남을지, 아니면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달앱으로 거듭날지 여부는 또다시 김 대표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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