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성장 '경계'를 허물다, 이치훈 토러스자문 CIO [매니저 프로파일]주요 연기금 자금 6000억 책임운용, '필립 피셔' 접한후 공학도→전문투자자 '변신'
허인혜 기자공개 2020-06-11 13:40:00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9일 07: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치투자와 성장주 투자를 동시에 추구하되 한 곳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 있고 넓은 투자가를 꿈꾼다."이치훈 토러스투자자문 투자총괄책임(CIO) 이사는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를 목표하던 공학도였다. 아버지가 물려준 우량주 주식을 팔며 주식시장에 발을 들인 그는 건축 병역특례자로 복무하면서도 밤을 새 투자 공부를 할 만큼 주식이 좋았다.
그의 투자 스타일은 첫 번째 꿈이었던 토목을 닮았다. 투자하는 대상을 산업군으로 묶고 투자 대상이 충분히 성장할 만한 토양인지 기반을 따진다. 하나하나의 층고를 쌓는 것처럼, 하나의 기업에서 좋은 수익률을 내더라도 엑시트하기보다 같은 산업군의 차기 모델에 재투자하는 방식을 쓴다. 자재를 쌓다보면 건물이 세워지는 것과 같이 투자 연혁을 따라가다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성장 스토리: 토목설계사 꿈꾸던 공학도, 자취방에서 '밤샘 주식공부'한 사연
고려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이 이사는 대학원 과정도 토목공학을 선택할 만큼 공학도로서의 꿈이 굳건했다. 이 이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르고 골랐던 전공"이라고 회고했다. 유명한 토목설계사를 꿈꾸며 울산 고향집에서 용돈을 받아쓰던 그를 주식투자로 이끈 첫 종목은 아버지가 물려준 '우량주'였다.
아버지의 주식을 물려받은 그는 투자에 처음으로 호기심을 느꼈다. 시중은행 금리를 잊고 살 만큼 금융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이사는 "당연히 잘 안됐다"며 웃었다. 흔한 개인투자자들처럼 종일 차트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금융증권 방송도 챙겨봤단다. 이 이사는 "SK하이닉스 등 누구나 아는 우량주였다. 들고만 있었어도 좋은 수익이 났을 텐데…"라며 "주식투자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물려받은 주식이 투자에 첫 발을 딛게 했다면 서점에서 접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의 가치투자 저서는 그의 길을 완전히 돌려 세웠다. 가치투자에 매료된 많은 펀드 매니저들처럼 그도 가치투자를 처음 접했을 때 '뒷통수를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건축설계 병역특례요원이었던 그는 퇴근 후 밤샘 주식공부를 할 만큼 투자에 재미를 붙였다. 당시 가치투자 키즈들이 활동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소통하는 한편 나름의 현장 실사도 나갔다. 여성 속옷 브랜드 '비너스'에 투자했을 때는 결혼 전 부인과 함께 속옷가게에 직접 가보며 소비층을 분석하기도 했다.
병역특례요원 복무를 마치자마자 VIP자산운용(전 VIP투자자문) 채용공고가 났다. 그의 독특한 이력서를 눈여겨 본 김일태 메리츠증권 상무(당시 VIP투자자문)가 이 이사를 면접했다. 처음에는 펀드매니저가 아닌 애널리스트로 투자업계에 데뷔했다. 2년간 애널리스트로서 분하며 다양한 투자 섹터를 경험했다.
그의 전공이었던 건설을 포함해 전기산업과 화학 등으로 지평을 넓히는 계기였다. 2009년 웅진루카스투자자문에서 펀드매니저로 1년 간의 경력을 쌓은 뒤 2010년 토러스투자자문으로 적을 옮겼다. 초짜 펀드매니저였던 그는 이제 12년차 펀드매니저로서 토러스투자자문 수탁고 8400억원을 진두지휘하는 CIO로 성장했다.
◇투자 스타일 및 철학: 성장주·가치투자 동시 추구, 수익 예견되는 모든 곳에 투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투자자는 워렌 버핏의 스승이라 불리는 '필립 피셔'다.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저서로 유명한 그는 가치투자자 중에서도 성장주에 초점을 맞춘 투자자로 평가받는다. 경기 사이클 등 거시경제 분석을 통해 투자하기보다 경영자의 성장 의지와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 투자 방식을 처음으로 수립했다.
이 이사의 투자 스타일도 온전한 가치투자라기보다 성장주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있다. 제로인이나 한국펀드평가에서 받아든 그의 투자 성향 분석도도 '대형 혼합'으로 분류된다. 이 이사는 "가치투자를 굳이 가치주와 성장주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싶지 않다"며 "기왕이면 성장주를 고르는 쪽이라고 봐야한다. 배당을 많이 주는 주식보다는 주주들의 자본으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내는 기업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가치투자자들이 '저평가주'에 관심을 둔다면 그는 수익을 계속 만들어줄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고 했다. 필립 피셔와 워렌 버핏 등 굴지의 투자자를 예로 들었지만 누군가와 똑같아지고 싶다는 꿈은 꾸지 않는다. 가치투자와 성장주 투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최대한 많은 섹터를 살펴보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특히 성장주의 경우 시장 규모가 기업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만큼 중요한 영역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이사는 "예컨대 반도체 시장이 좋다고 해서 반도체 성장주를 사는 게 아니라 반도체 시장 규모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 지를 파악하고 성장주에 투자해야 한다"며 "성장만 쫓아가다보면 산업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는 데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성장주가 한 번 최고점을 찍고 떨어지기 시작하면 무섭게 하락한다"고 봤다.
감춰져 있는 가치를 찾는 그의 성향은 애널리스트 시절 더 확고하게 굳어졌다. 주가수익비율(RER)이 낮아 눈에 보이는 밸류가 두드러지는 주라도 정당성이 없다면 깨지기 마련이라는 판단이다. 그는 "처음에는 밸류가 전부로 보이는 시절도 있었다"며 "서브프라임모기지 당시 자신있었던 건설업종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눈에 보이는 주가수익비율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트렉레코드1: '성장주' 투자 연기금 기관펀드 확립, 초과수익률 달성 주력
이 이사는 벤치마크(BM) 대비 초과수익률을 달성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연기금 자금을 주로 위탁받아 운용하는 토러스투자자문의 특성상 지나친 변동성을 쫓기보다는 코스피 대비 높은 수익률을 목표한다. 토러스투자자문의 주 고객은 국내 주요 공제회와 연기금, 금융기관들이다.
2020년 6월 기준 전체 수탁고는 8416억원에 이른다. 이 이사가 주식운용본부 CIO로서 모든 기관 펀드 운용을 총괄한다. 기관 일임펀드는 성장형과 목표달성형으로 나눠 운용하고 이중 성장형 펀드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2019년 말 전체 수탁고 7394억원 중 5683억원이, 올해 6월 기준 8416억원 수탁고 중 5705억원이 기관 펀드 중 성장형에 분배돼 있다.
단편적인 성장주 투자보다는 성장 산업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장기적인 수익을 목표한다. 2010년 아이폰의 등장을 보고 IT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군의 성장 가능성을 톺아보는 식이다. 2005년 개인용 컴퓨터 온라인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면 2010년부터는 모바일 통신, LTE의 시대가 접어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IT 시장의 변화를 예견하고 투자한 대표적인 종목이 반도체주와 엔터, 미디어주다. PC 산업이 레드오션화되면서 점차 가치가 줄었던 디램이 모바일 시대와 맞물려 다시 확대되리라는 예견으로 SK하이닉스를 담았다.
또 음원을 내려받아 듣던 시대에서 스트리밍으로 청취하는 시대로 넘어가리라는 예상 아래 음반 제작사 '로엔'에도 자금을 편입해 쏠쏠한 수익을 봤다. PC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넘어가던 2014년 투자한 컴투스도 4배 수익을 낸 장본인이다. '애니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때다.
IT주 외에 그가 주목한 종목은 바이오다. 2015년 대표적인 성장주 투자처로 바이오 분야를 낙점하고 코스피 대비 5.22%의 수익을 낸 그는 2017년에는 셀트리온을 편입해 승리를 맛봤다. 2017년은 셀트리온의 항암제 '트룩시마'가 바이오시밀러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던 차였다. 바이오주가 변동성이 지나치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그는 셀트리온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자금을 태웠다.
이 이사는 "트룩시마의 유럽 초기 침투율이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진전되는 것을 보고 시가총액이 크게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했다"며 "이후 코스닥 정책 기대감으로 셀트리온 그룹의 가치가 크게 높아지며 셀트리온 헬스케어를 편입했다"고 설명했다. 2017년의 기관 펀드 수익률은 28.61%로 BM대비 6.85%나 높은 성적을 냈다.
이 이사가 운용 중인 기관펀드들은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코스피 대비 연평균 3% 이상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코스피 대비 2015년 5.22%, 2016년 1.68%, 2017년 6.85%, 2018년 2.94%, 지난해에는 3.96%의 초과수익률을 기관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트랙레코드2: '홈쇼핑·전기차' 투자 쓴맛, 트렌드보다 빨랐던 감각이 '패인'
성장하는 사업을 미리 전망해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하다보니 트렌드보다 감각이 빨라 실패한 종목도 있었다. 지금와 돌아보면 예상대로 산업이 흘러갔지만 투자 시기가 산업발전 속도보다 앞섰던 종목들이다.
대표적인 종목이 CJ계열사 투자였다. CJ ENM의 드라마가 높은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때였다. CJ ENM에 투자해 성과를 얻은 그는 CJ오쇼핑으로 눈을 돌렸다.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이 빅뱅을 일으키던 때로 이 이사는 텔레비젼 홈쇼핑이 모바일 세상으로 진입하리라고 봤다. CJ ENM에서 맛본 성공으로 지상파 채널보다 새로운 채널에 대한 수요가 더 높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렇게 2년 전 CJ 오쇼핑에 투자했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했다. 이 이사의 예상보다 홈쇼핑의 모바일 시장 진출이 더뎠다. 최근에서야 카카오나 네이버 등이 '라이브커머스' 등의 플랫폼을 도입했다. 이 이사가 예상한 홈쇼핑시장의 모바일 진출이 뒤늦게 적중한 셈이다. 모바일 쇼핑 시장이 더 커진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도 큰 작용을 했다. 트렌드와 시장의 변화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커지는 적기를 잡는 감각도 큰 요소라는 점을 배웠다.
전기차 업종도 추가 투자와 '손절'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고전했던 종목이다. 역시 그의 예상이 실제 시장의 움직임보다 다소 빨랐다. 이 이사는 전기차의 높은 성장성을 전망하고 애정을 쏟았던 종목인 만큼 비중을 적절히 줄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전기차 비중이 높지는 않았지만 주가 하락기에 비중 조절을 적절히 하지 못하면서 약간의 손해를 봤다"고 했다. 전기차 산업도 최근 현대와 기아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자동차 기업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내연기관 점유율을 앞지르면서 호재가 찾아오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 부족 예상시점도 1~2년 뒤로 다가오며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보는 시장 참여자가 늘었다.
◇업계 평가: 토목공학도에게서 '고수의 가능성' 본 선배, 성장주 투자 '벗'
이 이사의 투자업계 대표적인 인맥은 김일태 메리츠증권 상무와 홍성철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송근용 슬기자산운용 CIO, 김진환 파인투자자문 주식운용팀장 등이다.
특히 김 상무는 투자관련 전공도, 경력도 없던 이 이사를 투자업계로 이끈 장본인이다. 이 이사는 "병역특례요원 복무가 끝나가던 때 VIP투자자문에서 채용공고를 냈다"며 "가치투자 하우스인 VIP투자자문과의 만남, 투자 경험이 없던 나를 믿고 발탁해준 김 상무가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상무는 토목공학과 출신으로 독특한 투자 경험을 적어낸 이 이사의 이력서를 눈여겨 봤다.
이 이사와 함께 일하며 그의 역량을 확인한 김 상무는 웅진루카스투자자문으로 적을 옮기며 이 이사를 영입한다. 이때 송근용 현 슬기자산운용 CIO도 웅진루카스투자자문으로 이직했다. 김 상무와 이 이사, 송 CIO는 직급과 나이가 무관하게 '삼총사'로 불릴 만큼 가깝게 지냈다. 성장주 투자와 가치투자 등 투자 철학을 공유하며 연을 쌓았다.
2010년 합류한 토러스투자자문에 11년째 재직하는 이유는 김영민 대표의 믿음 덕분이다. 후배들의 단단한 믿음도 한 몫을 했다. 이 이사는 "김 대표가 주식운용본부를 전적으로 신뢰해 주식운용본부의 운용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고 이야기했다.
◇향후 계획: "세상의 변화를 캐치해 늘 벤치마크 앞서는 매니저"
이 이사는 "2015년부터 6년째 코스피 벤치마크를 상회하고 있다"며 "꾸준히 벤치마크 이상의 수익률을 내며 10년 이상 코스피를 이긴 펀드 매니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기관투자자들이 벤치마크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선호하는 상황이지만 토러스투자자문의 기관펀드 만큼은 코스피를 앞서는 펀드가 되겠다는 각오다.
이 이사는 "지금은 코스피를 이야기하지만 향후에는 코스피200을 대상으로도 벤치마크를 넘는 기관펀드를 운용하면 기관투자자들도 성장주 투자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오너의 가치를 동시에 쫓는 성장주 투자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 이사는 "필립 피셔처럼 사고하려면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를 봐야 한다"며 "LG생활건강도 오래 보유한 종목 중 하나인데 차석용 부회장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 투자 종목에 반영하고 이를 통해 벤치마크를 앞서고 싶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후배 운용역들이 분위기에 압도돼 자유롭게 의견을 내지 못하는 토론 분위기를 지양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그는 깔끔하지만 편안한 피케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이 이사는 "한달에 한 번씩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팀원들에게 최대한 편하게 보이고자 노력한다"며 "아무리 좋은 팀장 밑에 있어도 팀원들이 이 종목이 좋다고 추천하지 못하면 적절한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고 했다. 앞선 투자 실패를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결국 '즐거운 투자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이사는 "연기금 자금을 운용하는 만큼 자산이 깨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트렉레코드를 내는 것 만큼이나 즐겁게 평생 주식을 하고 싶다"며 "연기금 자금 운용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업으로 생각해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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