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중고차매매 진출 파장]'캡티브' 현대캐피탈, 긴장하는 여전사들③전속사 지원책 확대 여지, 시장 독점 '과장된 공포'…엇갈린 관측
이장준 기자공개 2020-11-27 07:39:36
[편집자주]
현대차그룹의 중고차매매업 진출 예고로 캐피탈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중고차금융 주도권을 쥐고 있던 가운데 이제는 강력한 경쟁 구도 속에서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불건전한 '레몬마켓'을 정화할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도 있다.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금융계에 미칠 파장을 진단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11월 25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매매업에 진출하면 전속(captive)사 현대캐피탈이 관련 자동차금융도 대거 차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캐피탈 업계 종사자들은 이를 두고 하나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다만 중고차금융시장에서 현대캐피탈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정도일뿐 공포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 역시 있다. 특히 현대차가 중고차매매 시장에 뛰어든 주된 목적이 신차 판매에 있다는 해석이 주목된다. 중고차 매매가를 높여 신차 가격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란 것이다.
이를 볼 때 중고차 시장 진출 과정에 괜한 구설수를 살 수 있는 현대캐피탈 지원책은 피할 것이란 판단도 있다. 아울러 대기업이 중소기업 먹거리를 뺏는다는 비판도 나오는 만큼 시장을 해할 정도로 점유율을 급격히 높이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중고차 비싸게 매입, 신차 구매 유도…'트레이드인' 전략
현대캐피탈의 중고차금융시장 비중 확대 가능성은 곧 현대차의 중고차시장 장악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전제로 한 관측이다. 일단 국내 신차 시장만 놓고 보면 현대차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M/S)을 확보하고 있고 그만큼 중고차 시장에서 역시 현대차 매매량이 가장 많다.
현대차는 올 9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신차 58만4000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기아차도 41만5000대를 판매했다. 수입차를 포함했을 때 양사의 M/S는 72% 수준이다. 2016년 65.4%에서 줄곧 상승세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미국, 유럽 등 주요 거점시장에서 판매량이 주춤했으나 국내에서는 수요가 크게 줄진 않았다. 다만 국내 판매시장도 성숙기 단계에 접어들어 성장 여력이 크지는 않다. 이를 볼 때 현대차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은 내수 시장 내 경쟁력을 유지하는 측면도 고려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캐피탈사 관계자는 "현대차가 중고차 거래 시장에 개입해 가격 적정선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서도 중고차 가격이 어느 정도 받쳐줄 때 신차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신차와 중고차 가격 차가 너무 크면 신차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게 수입차 업체들이 활용하는 '트레이드 인(trade-in)' 전략이다. 소비자가 기존에 타던 차량을 비싼 값에 사들이고 자사 브랜드 신차를 구매할 때 할인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가 벤츠나 BMW 등 외국 업체들이 중고차를 비싼 값에 매입하고 신차를 할인해주는 전략을 벤치마킹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고차 사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궁극적으로 신차를 판매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물론 중고차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도 기대된다. 인증된 중고차를 판매하는 대신 가격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중고차 거래가를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캐피탈사 관계자는 "자동차 선진국 모델을 보면 신차 매장에서 중고차를 함께 판매한다"며 "신차를 보러 온 고객이 중고차 매물 상태를 보고 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고차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가격보다 신뢰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웃돈'을 주더라도 현대차가 인증한 매물을 사겠다는 고객이 늘어날 수 있다.
동시에 시장 전반적으로 정화 작용이 일어나면 가격을 더 중시하는 고객도 늘어날 전망이다. 중고차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지고 고객군이 분리되는 것이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속사 독점 '쉽지 않아', 금융그룹감독법도 변수
결국 중고차금융시장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중고차금융 침투율은 10%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업계 관계자는 "중고차시장에는 아직 금융 침투율이 낮은 편이라 성장 여력도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며 "현대차가 인증중고차 등 방식으로 매매업을 시작하면 중고차와 더불어 중고차금융 수요도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동차금융을 영위하는 캐피탈사에서는 불만이 앞선다. A 캐피탈 관계자는 "현업에서 현대차가 시장에 진입하면 중고차금융 사업도 접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고 말했다. B 캐피탈 관계자도 "제조와 금융 모두 신차시장은 이미 현대가 독점적으로 영위한다"며 "중고차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업계에서는 중고차금융에도 특유의 정산구조를 활용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의 전속(captive)사라는 강점을 살려 이들 회사가 판매하는 신차에 저금리나 무이자상품을 제공해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캐피탈도 조달이나 내부 비용을 감안하면 무이자상품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없지만, 현대차에서 나중에 금액을 보전해주는 '금리차 정산' 제도를 활용해왔다"며 "할인해준 금리 차이만큼 중고차 가격에 녹인 뒤 나중에 돌려주지만 판촉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전했다.
다만 금융그룹감독법 적용 시 현대차가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에 '몰아주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그룹감독법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비지주 금융그룹에 규제를 적용하는 게 골자다. 그룹 내 내부 거래나 위험 집중이 자본적정성 등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관련 법률안을 상정한 상황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신차금융도 현대캐피탈이 모든 물량을 소화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더 많은 차를 팔기 위해서 채널을 다각화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금융사가 중고차금융 내 현대차와 현대캐피탈 사이 빈틈을 파고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캐피탈사들이 느끼는 공포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전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혼탁함이 사라지면 안심하고 중고차를 찾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막상 시장이 열려야 알 수 있는 만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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