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제약사 투자 7년에 아쉬운 '3%' 수익률 의약품 제조 시너지 기대했지만 원금 회수에 그쳐…박필준 화일약품 전 대표 최대 이득
심아란 기자공개 2020-11-24 12:32:12
이 기사는 2020년 11월 24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화일약품 경영권 인수는 바이오텍과 제약사의 만남으로 주목을 끌었다. 의약품 제조업에 470억원을 베팅했던 크리스탈지노믹스는 투자 7년 만에 원금만 회수하는 선에서 화일약품 지분 정리에 나섰다. 지배구조 변화 속에서 최대 이익은 박필준 전 공동대표가 누리고 있다.2013년 크리스탈지노믹스는 화일약품의 구주 312만1371주를 468억2000만원에 취득했다. 이정규 화일약품 전 회장과 박필준 전 공동대표 등 기존 주주들의 주식을 주당 1만5000원에 사들였다. 매입가 결정 당시 화일약품 주가는 1만원대 초반으로 약 40% 할증됐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단숨에 화일약품의 지분 21.66%를 취득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회장은 화일약품 인수 이후 박 전 공동대표와 함께 회사를 이끌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화일약품의 인수 자금 대부분은 메자닌을 발행해 마련했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28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전환사채(CB)를 찍었다. 자체 현금은 50억원을 투입했다.
나머지 140억원은 일종의 '외상 거래'로 대금을 치렀다. 이 전 회장, 박 전 공동대표 등 4명의 화일약품 임원을 대상으로 크리스탈지노믹스의 BW와 CB를 발행해 인수 대금을 대신했다. BW는 80억원, CB는 60억원 규모였다.
2014년 8월 총 120억원어치의 BW와 CB는 보통주로 전환됐다. 당시 전환가는 1만122원,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주가는 1만4000원대로 화일약품 임원들은 40% 안팎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나머지 20억원의 BW에 대해서는 2년 후에 풋옵션을 행사해 원금과 이자수익을 챙겼다.
화일약품 임원들은 아쉬울 것 없는 거래였지만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인수 당시 기대했던 사업 시너지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주력 파이프라인의 임상이 지속되면서 직접적으로 화일약품의 제조 인프라나 네트워크를 활용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관절염 치료 신약인 아셀렉스의 원료를 화일약품이 제조하고 공급하는 정도였다.
시장에서는 크리스탈지노믹스의 화일약품 매각설이 꾸준히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2018년에 조중명 회장은 경영 의지를 내비치기 위해 화일약품 정관에 적대적 M&A를 차단하는 규정을 삽입하기도 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와 박 전 공동 대표가 33%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해 왔으므로 화일약품이 적대적 M&A에 노출될 위험은 크지 않았다. 양사의 사업적 협력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확신하며 선제적으로 경영권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목표였다.
그러다 올해 9월부터 화일약품 지배구조에 변화 조짐이 보였다. 항체치료제 개발 업체인 다이노나가 화일약품 경영권 인수에 나서면서다.
다이노나는 박 전 공동대표의 보유 주식 전량을 308억원에 사들이고 유상증자에 참여해 200억원을 투입했다. 다이노나는 18.65%의 지분을 확보해 화일약품 2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박 전 공동대표는 또 한 번 이익을 봤다. 다이노나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그의 지분을 시가보다 38% 비싸게 양수한 덕분이다.
지난 19일에는 크리스탈지노믹스가 보유 중인 화일약품의 주식 300만주를 토파지오, 아넬로, 블레도르, 이아시스 등 네 곳의 개인투자조합에 넘겼다. 매각가는 주당 1만800원으로 총 324억원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2019년 12월 화일약품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289만주를 취득하며 지배력 확대에 나선 바 있다. 결국 화일약품 지분을 정리하면서 지난해 유상증자는 투자 단가를 낮춘 거래에 그치게 됐다.
크리스탈지노믹스가 작년에 취득한 화일약품 신주는 주당 5902원이다. 7년 전 구주와 지난해 신주 인수가를 감안한 평균 매입 단가는 1만500원이다. 이번 구주 양도가가 1만800원으로 7년간의 화일약품 투자 성과는 3%의 차익에 불과한 셈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아직 화일약품의 지분 약 15%를 들고 있다. 이는 대부분 작년에 인수한 지분으로 내달 중순까지 보유해야 하는 물량이다. 남은 지분의 정리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크리스탈지노믹스 관계자는 "회사가 2년 전에 발행했던 CB와 BW 등 부채가 많아 그동안 임상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라며 "이제 CB 등이 보통주로 많이 전환된 만큼 신약 개발에 집중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고 화일약품 지분 정리도 해당 시점에 맞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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