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LP 첫 형사 분쟁]SK증권 PE·워터브릿지, 어떻게 승소로 결론 뒤집었나②배임 수사→사기 기소→무죄 판결…잠재 리스크 외부 노출, LP도 사전 인지
이명관 기자공개 2021-02-16 08:13:50
[편집자주]
투자시장에서 LP가 GP에게 투자실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빈번하다. 대부분 민사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최근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사기죄'를 적용해 형사소송을 제기한 첫 번째 사례의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GP의 손을 들어줬다. 더벨은 이례적인 소송 과정을 들여다보며 앞으로 투자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분석해 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10일 08: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비앤비코리아를 둘러싼 GP와 LP 간 첫 형사 분쟁은 GP의 승소로 막을 내렸다. 이번 송사의 핵심 쟁점은 브랜드사인 클레어스코리아의 자체생산 여부를 GP가 사전에 인지하였는 지 여부였다. 투자시점 당시 비앤비코리아는 OEM 회사로 클레어스코리아의 브랜드를 단 제품을 생산 중이었다.클레어스코리아의 자체생산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비앤비코리아 매출의 상당부분이 브랜드사로부터 창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클레어스코리아가 직접 생산에 나선다면 비앤비코리아의 실적에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했다.
LP는 GP가 클레어스코리아가 자체 공장을 신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만큼 자체생산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GP는 클레어스코라이가 신축 중인 공장은 홍보용 목적으로 알고 있었던 까닭에 자체생산 여부는 몰랐다고 반박했다.
◇딜 클로징 무렵 '이상징후'
사건의 발단은 GP인 SK증권 PE와 워터브릿지파트너스가 비앤비코리아의 경영권 인수 거래를 종결한 2015년 7월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증권 PE와 워터브릿지파트너스는 '마유크림'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비앤비코리아의 성장세에 과감하게 베팅했다. 몸값으로만 1200억원을 책정했다.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에비타) 대비 멀티플 12배가 적용된 수준이다. 당시 기준 제조사의 경영권 거래 멀티플이 7배 안팎에서 결정되고 있었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다소 높은 수준이다. 물론 당시는 화장품 제조사의 경우 중국발 호재가 겹치면서 후한 몸값을 인정받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어찌됐건 SK증권 PE와 워터브릿지파트너스는 다수의 LP를 통해 자금을 모아 순조롭게 딜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딜 클로징이 이뤄졌을 무렵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발단은 브랜드사인 클레어스코리아가 마유크림(쟁점 화장품)의 개발 및 제조(레시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클레어스코리아는 비앤비코리아가 단순히 OEM 제조를 하는 제조사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더불어 자체 생산공장 신축을 추진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독립을 위한 사전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앤비코리아는 이때까지만 해도 클레어스코리아와 레시피를 두고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개발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클레어스코리아가 유통망 관리에 실패했고, 비앤비코리아의 실적이 악화했다. 재고는 쌓였고, 화장품 물량이 대거 중국 보따리상들에게 헐값에 풀렸다. 이와 함께 사드 이슈가 불거지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했고, 중국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더욱이 2016년 말 이후에는 클레어스코리아가 자체 공장 완공으로 독립하면서 비앤비코리아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비앤비코리아는 매출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브랜드사의 이탈이 현실화되면서 반등 동력을 상실했다. 이후 500억원에 이르던 매출은 100억원대로 급감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GP와 LP 입장에서 보면 투자 1년여 만에 악재가 연이어 터져 자금 회수에 빨간불이 들어온 형국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LP 중 일부(하나금융투자와 리노스, 호반건설, 애큐온캐피탈, 유진저축은행)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GP가 비앤비코리아가 단순 OEM 업체라는 점과 브랜드사가 공장을 신축해 비앤비코리아를 배제하고 화장품을 자체생산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실을 LP에게 알리지 않았고, 이는 선관주의 의무 위반에 해당되는 만큼 배임 혐의로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공장 신축→자체 생산' 판단 어려웠을 것
그렇게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수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LP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 여기에 매각 자문사가 LP 측에 유리한 진술을 하면서 사건은 GP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결국 사건을 맡았던 검사는 의도적으로 LP에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배임이 아닌 사기 혐의로 GP를 기소했다. 이렇게 본격적인 법정다툼이 시작되기 전 분위기는 LP에게 다소 유리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재판이 LP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됐다. 우선 GP가 클레어스코리아가 공장 신축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맞았다. 그런데 신축 공장의 목적이 자체생산이 아닌 홍보에 방점을 뒀다는 클레어스코리아의 설명이 있었던 정황이 확인됐다.
여기서 GP가 클레어스코리아가 자체생산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명확했다. 근거해 보면 공장 신축만으로는 단시간 내에 기능성 화장품 생산이 사실상 어려웠다. 비앤비코리아가 임원을 파견해 공장 신축 과정에서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중국 수출을 위한 위생허가 신청 당시 클레어스코리아는 비앤비코리아를 화장품 제조원으로 앞서 신고를 해둔 상태였다.
더욱이 클레어스코리아가 공장을 신축한다는 사실은 이미 대외적으로 공표가 된 내용이었다. LP도 자연스레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LP도 GP와 마찬가지로 이를 브랜드사 단절 리스크로 확대 해석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GP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클레어스코리아가 비앤비코리아를 배제하고 쟁점 화장품을 자체생산할 가능성은 인식할 수 없었고, △공장 신축 자체만으로는 투자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레시피 관련 분쟁 인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거래 종결 직후 불거진 이슈로, 공장 신축만으로 사전에 GP가 이를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GP 입장에서 보면 브랜드사 단절 리스크의 현실화는 예기치 못한 변수였던 셈이다.
이번 판결은 향후 GP와 LP 간의 분쟁에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크게 두가지 측면면으로 하나는 잠재적인 리스크가 공공연하게 외부에 노출됐고, LP가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GP에게 고지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지의무가 있는 내용일지라도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정확히 전달받지 않을 경우 고의적으로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 이 같은 범주 안에서 내린 의사결정의 결과물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님이 명확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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