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내부거래 사각지대 점검]영풍개발 내부거래 비중 90%→0% '허와 실'⑭매출 2억원 사(死)기업화…㈜영풍 지분 15.53% 보유, 오너일가 '포기 못해'
박상희 기자공개 2021-02-23 11:32:13
[편집자주]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불리는 사익편취 금지 규정은 2015년 2월 본격 시행됐다. 공정위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수 기업들이 오너일가 보유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거나 계열사 흡수합병을 통해 지분율을 낮추는 등 지배구조에 변화를 일으켰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6년 만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한층 강화되면서 사각지대에 있던 기업들이 대거 사익편취 규제 대상으로 편입된다. 사각지대에 있던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내부거래 현황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19일 09: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초기엔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기업이 타깃이 됐다. 몇 년 전부터는 중견기업에 대한 사익편취 행위도 조사하면서 고민이 깊어진 기업들이 많다. 영풍그룹도 그중의 하나다.영풍그룹에서 일감 몰아주기 관련 주목을 받은 곳은 영풍개발이다. 오너일가가 지분을 30% 이상 소유하고 있고, 내부거래 비중이 90%를 넘었다. 영풍개발은 오너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거나 다른 계열사와 합병하는 우회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내부거래를 끊었다. 그 결과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사(死)기업이 됐다.
오너일가가 영풍개발을 버린 것일까. 이럴 바엔 영풍개발을 매각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답은 '아니오'다. 영풍개발은 ㈜영풍 지분을 15.53%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 상 핵심 계열사다. 일감 몰아주기에서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부거래를 포기했지만, ㈜영풍의 주요주주라는 존재 가치는 남았다.
◇영풍개발 오너일가 지분 33%, 매각 않고 내부거래 포기한 이유는
영풍그룹은 해방 직후인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그룹의 모태다. 국내 재벌가(家)에서 유일하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영풍그룹의 자산은 12조4450억원, 매출은 9조3800억원으로 재계 서열 28위를 기록했다. 계열 회사 수는 27개다.
두 집안은 70여 년간 번갈아 그룹 회장을 맡으며 잡음 없이 성장을 이끌어왔다. 장씨 가문은 대표회사인 ㈜영풍과 전자 계열사인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코리아서키트 등을 이끌고 있다. 최씨 가문은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중심의 비철금속 사업을 맡고 있다.
지난해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영풍그룹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은 4곳이다. ㈜영풍, 서린정보기술, 씨케이, 영풍개발 등이다. 이 가운데 씨케이와 영풍개발은 내부거래 비중이 제로(0)다.
영풍개발은 오래전부터 일감 몰아주기 규제 타깃으로 꼽혀왔다.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 오너일가가 설립하고 계열사와의 매출 거래로 성장하는 '일감 몰아주기'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풍개발은 장형진 회장 계열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도 하다.
영풍개발은 장형진 회장의 자녀 장세준, 장세환, 장혜선씨가 각각 11%씩 총 33%를 소유하고 있다. 최창걸 회장의 동생들 최창영, 최창근, 최창규씨가 각각 6.6%씩 총 19.8%를 가지고 있다. 영풍개발은 오너일가를 비롯한 주주에 매년 수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했다.
영풍개발은 건물관리업체다. 그룹 계열사 건물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매출이 내부거래로부터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내부거래 비율이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90%를 훨씬 웃돌았다.
그랬던 영풍개발의 내부거래 비중이 제로가 됐다. 공정위 공시에 따르면 2016년 영풍개발의 내부거래 금액은 17억원이었는데, 국내 전체 매출액(19억원)의 90%에 달했다. 2017년 내부거래 금액은 13억원으로 감소했는데, 전체 매출 규모는 65억원으로 커졌다. 내부거래 비중은 20% 수준으로 낮아졌다.
2018년부터는 내부거래가 아예 사라졌다. 영풍개발의 내부거래는 주로 ㈜영풍과 이뤄졌는데, 이 거래 관계가 끊어진 셈이다. 2018년과 2019년 영풍개발의 매출은 2억원 대다. 매출 규모를 감안하면 영풍개발은 더 이상 재계 순위 28위 그룹에 걸맞는 계열사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영풍그룹은 영풍개발을 버릴 수 없다. ㈜영풍 지분을 15% 가량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풍그룹 지배구조에서 ㈜영풍은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코리아서키트 등을 이끌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영풍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던 영풍개발의 내부거래를 완전히 끊었다”면서 “영풍 개발이 매출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영풍 주식을 보유한 주요 주주라는 것만으로도 지배구조 상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SI업체 서린정보기술, 공정위 규제 기준 허들 맞춘 꼼수(?)
영풍개발은 내부거래 비중을 제로로 만들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고민은 남았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가운데 ㈜영풍과 서린정보기술은 내부거래 비중이 10% 초반대다. ㈜영풍은 내부거래 금액이 1309억원(10.06%)이고, 서린정보기술은 28억원(12.43%)다. 서린정보기술은 시스템 통합(SI) 업체다. SI업체는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관련 요주의 업종으로 예의주시했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으로 분류된 기업들 가운데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의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위의 규제 대상이 된다. 서린정보기술의 경우 금액이 200억원을 넘지 않는다. 내부거래 비중은 마지노선(12%)에 가깝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서린정보기술은 내부거래 금액과 비중이 공정위 규제 대상에 거의 부합하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관련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가 지분을 30% 이상(상장사 기준, 비상장사는 20% 이상) 보유한 계열사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었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상장·비상장 계열사'와 ‘이들 계열사가 지분을 절반 넘게 가진 자회사'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확대됐다.
영풍그룹에서 규제 강화로 사각지대에 있다 새롭게 규제 대상으로 분류된 기업은 영풍정밀, 엑스메텍, 영풍전자, 농업회사법인 에스피팜랜드 네곳이다.
영풍전자와 에스피팜랜드의 내부거래 비중은 제로다. 영풍전자 역시 내부거래 비중이 0.26%에 불과하다. 에스피팜랜드는 영풍그룹의 농지를 관리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엑스메텍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매우 높다. 2019년 말 기준 내부거래 비중이 100%다. 전체 매출 18억1100만원이 내부거래로 이뤄졌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영풍개발은 건물을 관리하는 기업이고, 엑스메텍은 공장 설비를 관리하는 기업"이라면서 "사실상 같은 법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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