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업 ESG 트래커]롯데, 오너 경영의 그림자...빛바랜 'G'·'S' 우수등급②'B+' 이상 정량 충족, '공정거래·오너 리스크' 잡음 글로벌 하위
최은진 기자공개 2021-03-02 09:09:25
[편집자주]
수년 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재계 트렌드로 부상했지만 국내 유통기업들에게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며 그들만의 시장이 고착화되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공정거래 및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소비자와 투자가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유통 공룡을 중심으로 ESG 행렬에 가세하면서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유통기업들의 ESG 현황과 전략 등을 들춰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24일 14: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롯데그룹은 이제 막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첫발을 뗐지만 사실 국내 평가기관의 등급만 놓고보면 이미 꽤 우수한 점수를 득하고 있다. 지주사 출범 이후 경영 투명화를 선언하며 필요한 조직을 대부분 갖추고 사회공헌 활동 등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정량적으로 롯데그룹의 ESG 경영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하지만 롯데그룹의 경영철학이 ESG 본질에 맞게 변화했는지 여부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매년 불거지는 공정거래 및 환경이슈, 지배구조 문제 등은 끊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롯데그룹의 ESG 경영에서 무엇이 잘못됐는 지 들춰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의외로 해외기관의 ESG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2017년 경영투명화 단행 후 우수등급 유지, 이사회·사회공헌 등 개편
2020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평가한 롯데그룹 주요 상장계열사의 ESG 통합등급은 B+~A 사이다. 탁월한 ESG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기업에 S등급이 부여되고 그 이하부터 매우우수, 우수, 양호, 보통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양호와 우수' 등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롯데그룹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ESG 요건 대부분을 성실하게 충족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SK그룹의 지주사 SK㈜를 제외하고 상위권 대그룹의 주요 상장 계열사들이 평균 A 이상 등급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특이한 대목이 있다면 그룹의 모기업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지주가 가장 낮은 등급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배구조와 환경에서 '보통'으로 평가되는 B등급을 받은 것을 보면 오너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입김 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환경과 무관한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롯데그룹의 ESG 등급은 수년째 거의 정중동과 같다. 2017년 형제의 난이 종식되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경영 투명화를 위한 조직이나 주주친화 정책 및 사회공헌정책 등 골격을 다져 놓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결과다.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롯데케미칼이 환경평가 등급에서 큰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이밖에 이사회나 주주친화정책 등은 ESG 평가기관에서 요구하는 일정 수준 이상을 이미 대부분 갖췄다. 예를들어 2016년 대신경제연구소가 롯데그룹 지배구조 보고서를 통해 지배주주가 이사로 등재된 계열사의 보상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한 제언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롯데지주·롯데제과·롯데케미칼 등 신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올라있는 계열사들은 2019년께 모두 보상 또는 보수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사회 내 설치했다.
사외이사수를 과반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했다. 예컨대 롯데푸드의 경우에는 상장 계열사이지만 자산이 2조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과반 이상의 사외이사를 둘 필요가 없다. 그러나 ESG 평가기관의 제언에 따라 후속조치를 했다. 현재는 7명의 등기임원 가운데 과반 이상인 4명이 사외이사다.
환경(E)평가에서는 롯데그룹이 환경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고려되면서 우수한 등급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화학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을 제외하고 유통·식음료 업종이 대다수인 만큼 친환경 소재 및 폐기물 배출 문제 말고는 크게 변동될 유인이 없다. 사회(S)평가 역시 롯데그룹 전 계열사가 사회공헌 관련 조직을 두고 매분기 또는 매년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공정거래 이슈·오너 리스크' 발목, MSCI 평가 평균 미만
롯데그룹이 우수한 ESG 등급을 받고 있다고 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지키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국내 관련기관의 등급 평가는 정량평가가 기본이다. 더욱이 국내 동종기업들과의 상대적인 평가도 정성평가에서 반영되는 만큼 국내 '현실'이라는 한계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
ESG의 각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이 같은 현실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S(social)의 경우 롯데그룹 전체 상장계열사는 대부분 '우수'에 해당하는 A 이상의 등급을 받고 있다. 특히 롯데쇼핑은 A+ 등급을 받으며 매우 우수한 사회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평가직전인 2019년 말 롯데쇼핑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판촉비 전가 등 불공정행위 등에 대한 시정명령과 함께 400억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과징금을 받았다.
무엇보다 오너이자 일부 계열사의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신 회장이 2019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선고를 한 원심 판결을 최종확정받아 유죄가 인정됐지만 관련 사안에 대한 평가가 반영되지도 않았다. 신 회장은 당시 롯데지주·롯데제과·롯데케미칼·롯데쇼핑 등의 등기임원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들 계열사의 S항목의 점수는 모두 변동이 없었다.
G(governance) 항목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지주·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롯데푸드를 제외하고 모두 A 등급 이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롯데쇼핑 등 일부 계열사들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있는 대목도 옥에 티다.
신 회장이 유죄판결이 확정된 이후 일부 계열사 이사직을 사임하긴 했으나 여전히 수많은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주요보직을 맡고 있는데다 이들 계열사의 이사회 참석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투명경영 시스템을 갖췄지만 여전히 오너경영이라는 그림자가 구석구석 감춰져 있다.
외국계 ESG 평가기관은 이러한 문제들을 상대적으로 국내기관보다 더 민감하게 짚어낸다.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이 평가한 롯데그룹의 ESG 평가는 거의 최하위 등급이다. 글로벌 기업과 견줄 때 한국기업들의 점수가 상당히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기업문화 자체의 선진화가 아직 갈길이 멀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MSCI ESG 등급은 △AAA △AA △A △BBB △BB △B △CCC 등 7개로 구분된다. 이 중 롯데지주는 줄곧 BB등급을 받고 있다. 2018년 한 때 B등급으로 상향조정되긴 했지만 국정농단 사건 등의 이슈가 터지면서 다시 하향조정됐다. BB등급은 평균 미만의 점수다. 영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LGIM이 평가한 롯데지주의 ESG 점수는 100점 만점에 23점에 불과하다.
MSCI의 롯데쇼핑 등급은 B, LGIM 점수는 23점으로 평가됐다. 롯데케미칼은 MSCI 평가 BB, LGIM 점수는 18점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과 견줄 때 열악한 이사회 규정, 지배구조 등이 점수를 끌어 내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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