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분석]SK㈜, 투자형 지주사 넘어 투자전문회사로 진화①4년 만에 새로운 지주사 개념 제시...4대 핵심사업에만 투자
조은아 기자공개 2021-04-27 10:43:07
[편집자주]
1999년 지주회사 설립과 전환이 허용된 후 지주회사 체제는 재계의 '표준'이 됐다. 제도 시행 후 20여 년이 흐르며 각 그룹의 지주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룹의 얼굴인 지주사의 현주소를 더벨이 취재했다. 각 그룹에서 지주사가 차지하는 의미와 지주사의 현금 창출구를 비롯해, 경영 전략, 맨파워, 주요 이슈를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21년 04월 22일 08: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는 2015년 SK C&C와 SK가 합병해 통합 지주회사로 출범했다. 지주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나뉘어 기존의 평범한 지주회사 모델을 따라가는 듯했던 SK㈜는 2017년 투자형 지주회사를 표방하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장동현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그 뒤 SK㈜는 매년 1조원 가량을 미래 먹거리에 투자해왔다.그리고 4년여 만인 지금 SK㈜는 한 단계 더 진화한 새로운 지주회사 청사진을 들고 나왔다. 바로 ‘전문가치 투자회사’다. 투자형 지주회사와 전문가치 투자회사는 뭐가 다를까. 기존에 '투자'에 방점이 찍혔다면 앞으로는 '전문가치'에 방점이 찍힐 예정이다.
투자형 지주회사로 지낸 시기 SK㈜가 거둔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바이오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증시를 뜨겁게 달군 SK바이오팜의 화려한 상장은 그 결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K팜테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국(SK바이오텍), 아일랜드(SK바이오텍 아일랜드), 미국(앰팩)의 통합법인으로 출범한 SK팜테코는 2~3년 안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해 글로벌 톱 CMO(위탁생산) 기업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받는다.
이밖에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에도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당장 동남아 ‘우버'로 불리는 ’그랩(Grab)‘은 올해 안에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 SK그룹은 SK㈜ 주도로 2018년 2500억원을 투자했는데 그랩이 상장하면 보유한 지분 가치가 5900억원으로 약 2.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SK㈜ 사업보고서의 타법인 출자현황에 따르면 2017년 이후 SK㈜가 투자한 곳만 40곳이 넘는다. 카셰어링을 비롯한 공유경제, 빅데이터, 스마트팩토리 등 크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앞날이 유망하면 투자했다.
투자사업이 순항하고 있음에도 SK㈜의 고민이 깊어진 이유는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에서 찾을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기업의 생존까지 좌우하는 화두로 떠오르면서 SK㈜도 기존의 투자 성과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동현 SK㈜ 사장은 3월 말 SK그룹의 새 경영철학 ‘파이낸셜 스토리’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상황에 마주하면서 SK㈜가 투자자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 지금 이대로 가면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며 “긴 고민 끝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전문가치 투자자’라는 해답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매출과 영업이익 등 기존의 재무성과 뿐만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통해 고객, 투자자, 시장 등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부터 경영 화두로 줄곧 강조하고 있다.
SK㈜가 강조하는 전문가치 투자의 핵심은 간단하다. 이전까지 이른바 ‘돈이 된다’ 싶으면 투자 영역을 크게 가리지 않았다면 이제 투자여부를 결정할 때 한층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 핵심사업이 아니면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SK㈜가 제시한 4대 핵심사업은 첨단소재, 그린, 바이오, 디지털이다. 앞으로 SK㈜의 투자는 이 4개 핵심사업 범위 안에서만 이뤄진다. SK그룹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 통신, 에너지, 분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분야들이다. 동시에 전반적 투자 기조와 어긋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재원을 적극 활용해 4대 영역을 중심으로 성장 포트폴리오를 명확하게 짜기로 했다.
SK㈜는 이를 위해 우선 올해 초 기존 투자센터를 재편하고 투자센터의 이름도 각각 첨단소재 투자센터, 그린 투자센터, 바이오 투자센터, 디지털 투자센터로 바꿨다. 3월에는 기존 영문 이름 ‘SK Holdings Co., Ltd.’를 ‘SK Inc.’로 바꾸기도 했다. 영문 이름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지주회사를 뜻하는 'Holdings'도 과감하게 떼어낸다. 지주회사로서의 정체성보다 투자전문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장 최근 SK㈜가 투자하기로 한 시그넷EV를 보면 SK㈜의 투자 방향성이 한층 더 잘 보인다. 시그넷EV는 글로벌 2위의 전기차 충전기 제조사다. 단순 '모빌리티'가 아닌 ‘전기차’에 방점이 찍힌 투자다.
이번 투자는 4개 투자센터 가운데 첨단소재 투자센터가 담당했다. 첨단소재 투자센터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의 분야를 담당하는 센터다. 시그넷EV와 함께 투자 계획을 밝힌 볼보의 고성능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투자로 볼 수 있다.
SK그룹은 수많은 M&A(인수합병)와 투자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다. 오직 인수합병만으로만 밸류체인을 이룬 반도체사업은 SK그룹의 DNA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 하이닉스(SK하이닉스)를 인수했고 2015년 반도체 소재 특수가스를 만드는 OCI머티리얼즈(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2017년 반도체 소재 웨이퍼를 만드는 LG실트론(SK실트론)을 인수해 반도체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와 인수합병이 SK그룹 성장의 원동력이 된 만큼 단순 지주회사를 넘어 투자전문회사를 표방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며 “SK㈜ 매출 절반을 차지하던 SK이노베이션이 업황 악화로 휘청이고 SK텔레콤 역시 내수 위주 통신시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던 점과도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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