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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에 낀 삼성]뇌관 점화된 반도체, 커지는 '양자택일' 압박①무역분쟁 넘어 국가안보 이슈…반도체 종주국 vs 최대 구매자 '줄타기'

원충희 기자/ 김혜란 기자공개 2021-05-24 06:50:00

[편집자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자국주의'가 한층 맹렬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삼성도 두 고래의 헤게모니 다툼에 자칫 새우등 터질 수 있는 만큼 경영과 투자 모두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특히 미중 슈퍼파워 게임의 격전장이 된 반도체 산업은 더욱 민감한 상황이다. 삼성의 미·중 사업현황을 점검하고 이들을 둘러싼 글로벌 시장 환경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7일 07:0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미국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공급망 강화방법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반도체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열고 삼성전자 등 19개 기업을 불러 모은 뒤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 훼손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과 중국이 '산업의 쌀'인 반도체의 생산 자국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다.

반도체 종주국격인 미국은 현재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한국, 대만 등 아시아권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작년 코로나19의 맹위가 한풀 꺾이고 억눌린 수요가 폭발하자 세계적으로 반도체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반도체 공급체인을 자국 내로 끌어와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한때 미국은 반도체 생산에도 선두주자였으나 비즈니스 모델이 크게 바뀌면서 취약점이 생겼다. 인텔처럼 칩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 위주였지만 대만, 한국의 부상으로 뒤쳐졌다. 이에 생산을 외주하는 설계전문 팹리스 모델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핵심기술을 놓지 않고 대만, 한국을 반도체 하청기지처럼 두는 방식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자료 발췌

코로나19가 이 같은 공급사슬을 흔들었다. 제아무리 기술을 손에 쥐고 있어도 반도체 실물을 수입해와야 하는데 지역봉쇄와 자국우선주의로 차질을 빚으면 미국 내 제조업이 타격을 받는 약점이 노출됐다. 스마트폰, 자동차, 전자 등 각종 산업의 기초소재인 반도체를 구하지 못할 경우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다. 차량용 반도체 보릿고개로 현대차·기아 공장이 줄줄이 셧다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최대 구매사는 애플이며 구매규모는 전년대비 24% 증가한 536억달러(약 59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11.9%에 달한다. 반도체 대란의 여파가 밀어닥치면 천하의 애플도 현대·기아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반도체 기술은 우주항공, 방위산업 등 국가전략기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미 정치권이 반도체 이슈를 국가안보 문제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에 끼어들려는 일명 '반도체 굴기' 계획을 공격적으로 전개하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미국은 중국보다 먼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사슬 재편을 추진, 중국의 행보를 사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했다. 중국에 대한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판매를 금지시킨데 이어 심자외선 노광장비(DUV)의 공급도 제한했다.

삼성에게는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한 생산기지이자 판매처이나 두 국가는 한쪽 편을 설 것을 강요하고 있는 형세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사인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설립에 120억달러(약 14조7000억) 투자계획을 밝히며 일찌감치 편을 정했다. 갈수록 생산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TSMC의 적극적인 미국에 대한 화답은 삼성전자를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미국시장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자료 발췌

이는 단순히 시장점유율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은 반도체 종주국으로 불릴 만큼 관련 기술과 인프라도 갖춘 곳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중국보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다"며 "반도체 제조사들은 미국의 기술력과 장비 등에 종속돼 있기 때문에 미국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성이 제조업 왕국인 중국시장을 등한시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전직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전 세계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40%가량을 중국이 사들이고 있다"며 "중국향 매출 의존도가 크고 커스터머(소비자)들이 다 거기에 있는 만큼 삼성 입장에선 중국 전략을 생각 안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중국에는 세계 반도체 3위 수요자(점유율 4.2%)인 화웨이를 비롯해 반도체가 필요한 많은 생산업체가 즐비해 있다. 대만 TSMC가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로 인해 손대지 못하는 중화권 업체들의 수요를 독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으로 상상이상의 후폭풍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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