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CB 규정]코로나발 롤러코스터 증시, 리픽싱에 칼빼든 금융위①전환가액 상향조정 근거 마련…증시 변동성·유동성 확대, 불법·불건전행위 근절 차원
이효범 기자공개 2021-05-27 08:03:25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전환사채(CB) 규제 강화에 나선다. 큰틀에서는 기존 주주에게 불리했던 규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전환가액을 조정하는 리픽싱(refixing) 제도와 최대주주의 콜옵션(call option) 규정이 가장 먼저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 영향으로 발행사와 헤지펀드 운용사의 전략 변화도 불가피하게 됐다. 더벨은 이번 규제 배경과 CB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25일 07: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전환사채(CB) 리픽싱(전환가격 조정)에 칼을 빼들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시중 유동성이 대거 유입됐다. 특히 동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뛰어든 영향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이 과정에서 불법·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집중 감시 대상으로 지목한 분야 중 하나가 CB다. 특히 과도한 전환가액 하락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을 우려, 주가 상승시 전환가액을 상향 조정하는 법적근거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 입법예고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 중이다. 내달 14일까지 의견 청취를 마무리하면 본격적인 개정 절차에 돌입한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제 3자에게 콜옵션을 부여한 CB에 대한 공시 강화 △콜옵션 부여 전환사채에서 최대주주 등의 콜옵션 행사한도 제한 △전환가액 조정제도 개선 등이다.
특히 전환가액 조정제도 개선은 주가 하락으로 CB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된 이후, 다시 주가가 상승할 경우 전환가액이 발행당시 가격을 상한선으로 상향 조정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과도하게 희석되는 것을 방지, CB 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다. 현행 CB 규정상 주가에 따라 전환가액이 하락한 이후 주가가 다시 반등하더라도 전환가액은 상향 조정되지 않는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발행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CB 최초 전환가액의 70% 이상의 범위 내에서 주가에 연동해 전환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발행사가 정한 일정 시점인 전환가액 조정일에 매번 새로운 전환가액이 정해진다.
전환가액을 상향 조정하는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규정에는 감자, 주식병합 등 주가 상승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감자 혹은 주식병합 등으로 인한 조정비율만큼 상향해 반영하는 조건으로 CB를 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는 주가 상승시에도 전환가액이 상향 조정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규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코로나19 이후 국내 증시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증시 변동성이 커졌고 대규모 유동자금이 증시에 유입됐다. 국내 코스피, 코스닥 지수는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2020년 1월 2일 코스피 지수 종가는 2175.17에서 2월까지 2200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3월들어 1500 선 아래로 떨어져 연초 대비 30% 넘게 하락했다. 다만 4월부터 회복세로 접어들어 지난해 연말께 2800선을 상회했다. 코스닥지수 역시 지난해 3월 한때 500선 아래로 떨어졌다가 회복, 같은해 연말께 900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투자자 예탁금은 3월초 33조2000억원 가량에서 8월말 60조5000억원 가량으로 증가했다. 또 증권 활동계좌수는 같은 기간 2993만개에서 3310만개로 늘었다. 3월초부터 8월말까지 국내 증시가 급락한 이후 반등하는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이 국내 증시로 대거 몰렸던 셈이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기회로 삼고 증시로 향했다.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응해 불법, 불건전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증권시장 불법·불건전행위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특히 무자본 M&A, 전환사채(CB), 유사투자자문업 등 취약분야를 집중점검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다. 전환사채 발행을 매개로 한 내부자의 미공개중요정보 이용, 부정거래 가능성 등을 점검했다.
지난해 CB에 대한 전환권 행사 규모도 2015년부터 연간 기준 최고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 기관을 통한 CB 전환권 행사 규모는 2020년 2조2802억원에 달했다. 행사 건수로는 4000건을 웃돌았다. 전년대비 행사금액은 2배 가량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분기별로 살펴보면 주가 상승세가 이어진 3분기에만 전환권 행사한 규모가 8000억원을 웃돌았다. 연간 행사금액 중 3분의 1을 상회하는 규모다.
CB 리픽싱 규정 개정은 금융위가 종합대책에 따라 CB 시장에 대한 집중점검 활동을 펼친 이후 내놓은 후속 대책이다. 앞서 종합대책을 내놓을 당시만 해도 사모 전환사채 발행시 사전공시 의무화 등을 통해 전환사채 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한다는 내용에 그쳤다. 세부적으로 전환가액 조정시 공시 의무화(현행 자율신고), 조정조건 명문화, 조정횟수 제한 등을 포함했다. 리픽싱 상향 조정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금융위는 시장 점검 과정에서 리픽싱 전환가액이 주가 반등시에 다시 상향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삼고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CB 리픽싱을 활용해 불건전 불법행위가 가능했던 구조 자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지난 10월 증권시장 불법·불건전행위 근절 종합대책 발표에서 CB를 활용한 불법 불건전 행위의 예시를 든바 있다. A사(社)는 최대주주 갑(甲)에게 콜옵션을 부여하는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악재성 루머를 유포해 주가하락을 유도하고 전환가액을 하향 조정했다. 이후 갑이 콜옵션을 행사해 전환사채를 취득하고, 루머해소 후 주가가 상승하면 전환권을 행사해 지분을 늘리고 전환차익 취득한 사례다.
코로나19 이후 실제로 이같은 사례를 적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CB 리픽싱 규정이 투자자에게만 유리한 규정으로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발행사의 기존 주주에게는 불리하다는 것. 주가가 하락할 경우 CB투자자가 향후 전환할 수 있는 주식 수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더욱 희석된며,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면 의도적으로 주가 떨어트려서 전환가액 낮추고, 주가가 다시 상승했을때 올라갔을 때 하향 조정된 전환가액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거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실제로 이같은 사례를 적발해 이번 규정 개성에 착수한다기 보다는 시중에서도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시장의 의견수렴 등 입법예고 이후 규제개혁위원회, 법제처 등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증권선물위원회 등 금융위원회 의결절차도 거친다. 통상 금융위원회 주도의 고시 개정 절차는 입법예고가 끝난 이후 2개월 안팎이면 완료된다. 다만 사안에 따라서 이같은 절차 역시 더욱 길어질 수 있다. 최근까지 이번 개정안에 이의를 제기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가 CB 전환가액 상향조정을 의무화하는 조치는 어느정도 명분이 있다"며 "하지만 불법적인 행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취지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의도적으로 주가를 조작한다는 점인데 주가 조작이 꼭 CB를 통해 이뤄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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