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CB 규정]코스닥 상장사 ‘직격탄’, 모험자본 공급 역행 우려②리픽싱 상향 조정시 투자 매력도 저하…기업 부실화 문제도 지적
이효범 기자공개 2021-05-28 12:57:49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전환사채(CB) 규제 강화에 나선다. 큰틀에서는 기존 주주에게 불리했던 규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전환가액을 조정하는 리픽싱(refixing) 제도와 최대주주의 콜옵션(call option) 규정이 가장 먼저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 영향으로 발행사와 헤지펀드 운용사의 전략 변화도 불가피하게 됐다. 더벨은 이번 규제 배경과 CB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26일 13: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전환사채(CB) 리픽싱 조건을 강화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어 코스닥 상장사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코스닥 기업들은 리픽싱 조건이 달린 CB를 저리 조달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CB 시장을 키운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리픽싱 상향 조정으로 자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경우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금융위의 리픽싱 규정 개정이 현 정권들어 강조해 온 모험자본 공급에 역행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CB 발행사 코스닥 기업 대다수…발행사 CB 상환부담 커지나
CB 리픽싱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면 거의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제도다. CB를 발행하는 기업은 주로 코스닥 상장사다. 국내 우량기업들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 희석 등을 이유로 발행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코스닥 기업의 CB 발행은 유가증권 기업에 비해 8배(2018년 발행건수 기준) 이상이다. 전체 발행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유상증자, 금융기관 차입, 채권발행 등이 여의치 않는 코스닥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이처럼 비우량기업들이 CB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비결은 리픽싱에 있다. 국내 발행사 대부분은 리픽싱 조항을 달고 CB를 찍는다. 또 최근 10여년간 발행된 메자닌 채권 중 발행 이후 리픽싱을 실시한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리픽싱 제도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사와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CB 중에는 만기 이자율 0%로 발행되는 사례도 많다. 그만큼 발행사 입장에서는 CB를 통해 이자를 지급해야 할 부담을 없앨 수 있는 셈이다. 채무부담이 발생하긴 하지만 주식 전환이 이뤄질 경우 상환 의무도 사라진다.
최근 5년간 국내 기업들의 전환사채 발행 추이를 살펴보면 발행액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4540억원에 그쳤으나 2018년 2조원을, 2020년 6조원을 각각 돌파했다. 이 가운데 만기시 0% 금리로 발행되는 CB 규모는 2019년을 제외하면 매년 절반 가량이다.
0% 금리로 CB를 발행한다는 건 투자자 입장에서 만기시 금리를 받지 않더라도 투자할만한 매력포인트가 있다는 의미다. 가령 주가 상승 여력이 크거나, 재무적인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국내 CB 시장에 전반적으로 발행이 늘어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량하거나 자본차익 기회가 높은 기업에 투자금이 몰린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변동성이 큰 코스닥기업 CB에 투자할 경우 리픽싱이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또 주가가 하락한 이후 반등하지 못해 자본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만기까지 전환권을 행사하지 않고 원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원회가 상향 조정되지 않는 리픽싱에 제동을 걸면서 CB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리픽싱이 주가에 따라 상향 조정된다면 그만큼 자본차익을 누리기가 어려워져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CB 발행사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우량하고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면 이번 제도 개선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원리금 상환 여력이 크지 않은 기업의 경우다. 메자닌 채권의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만기 시점에 발행사가 사채를 전액 상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CB를 차환발행 하는 형태로 상환자금을 마련해왔던 구조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신용도가 낮은 CB 발행기업의 부실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리에 따라 리픽싱 규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우량한 기업은 리픽싱을 80%, 90% 수준만 허용하거나 아예 없애는 경우도 있다"며 "회사채 발행시 신용등급에 따라 발행금리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법에서 리픽싱 한도를 초기 전환가액의 70% 이상으로 하더라도 모든 CB 전환가액이 하한선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R&D 지속' 바이오기업 등 타격 가능성…올들어 CB 발행 봇물
물론 리픽싱 제도가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설정됐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건 사실이다. 특히 CB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할 경우 발행 주식수가 늘어나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희석한다는 점에서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CB 리픽싱을 70%로 제한하는 것도 유상증자시 발생할 수 있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 희석을 감안해 정한 규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발행사가 투자 등을 위해 자금이 필요할 경우 선택지는 금융기관 차입,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CB발행 등이다. 일반 공모 유상증자 시에도 발행가격 할인율을 30%까지 적용할 수 있다. 기존 주주들이 추가적인 자금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지분율 희석이 불가피하다.
금융위의 리픽싱 규정 개정이 '모험자본 공급'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현 정권에서는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위해 자본시장 활성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스닥벤처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코스닥벤처펀드 출범에 앞장섰다. 사모로 설정된 코스닥벤처펀드 대부분은 코스닥벤처기업 주식 투자에 따른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메자닌을 주로 편입하고 있다.
A운용사 관계자는 "자산이 거의 없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의 취약한 자본구조를 보완해주는게 CB"라며 "그동안 리픽싱을 70% 이상으로 정했던 이유는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금융기관 차입 등이 어려운 기업에 자금 조달 루트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리픽싱에 대한 매력이 떨어질 경우 이같은 기업에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운용사 관계자는 "기업이 R&D 투자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CB는 주요한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라며 "특히 바이오기업의 재무구조는 산업의 특성상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리픽싱이 그나마 안전판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규정 개정이 되면 바이오기업 등 재무적 안정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받는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들의 CB 발행은 올들어 큰폭으로 증가했다. 연초부터 이달 25일까지 국내기업들은 총 203건을 발행했다. 발행액은 3조4324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지난해 CB 발행액과 발행건수의 절반 규모를 웃돌았다. 또 2018년 연간 발행액을 훌쩍 뛰어 넘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금융위의 규정 개정에 앞서 코스닥상장사들이 선제적인 자금조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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