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60년만에 손바뀜 '오너리스크' 종착지 창업주 2대서 매각 '결단'…10여년 '갑질기업' 오명 소유권까지 내려놔
전효점 기자공개 2021-06-01 11:21:06
이 기사는 2021년 05월 28일 08: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남양유업이 오너기업으로서 60년 역사를 일단락지었다. 1964년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설립하고 2대 홍원식 전 회장이 대를 이어 경영한지 만 58년 만이다.최근 홍 전 회장의 회장직 퇴임에서 오너일가의 이사회 등기임원 사임까지 경영 쇄신 노력을 이어온 남양유업은 결국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 전 회장이 본인 지분을 포함해 오너 일가의 지분 53.08% 가운데 52.63%를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3107억원에 처분하는 결단을 내리면서 남양유업의 주인이 바뀌었다.
가업 양도는 결국 남양유업의 가장 크고 유일한 리스크가 오너일가 본인들이었다는 출발점에서 이뤄졌다. 홍 전 회장은 처음에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쇄신을 꾀했지만 결국에는 소유권까지 내려놓는 결단을 내렸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지난달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였다. 2013년 대리점 갑질이 촉발한 불매 운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거의 매년 끊이지 않는 구설수가 누적된 결과로 봐야한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남양유업은 철저히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는 기업이 됐다.
최초로 '갑질 기업'이라는 딱지가 붙었던 2013년 제품 강매 사건은 본사 영업 직원이 대리점 직원을 상대로 폭언을 하고 일부 비인기 상품을 강제로 판매시키는 이른바 '밀어내기' 행위가 밝혀져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비도덕적인 기업으로 강하게 각인된 남양유업은 치부가 있을 때마다 '갑질' 프레임을 고착화시키며 매번 여론에 소환됐다.
여직원에 대한 성차별 이슈가 드러나고 경쟁사 제품을 비방하는 네거티브 마케팅을 즐겨 써왔다는 관행도 문제가 됐다. 대표 제품 불가리스를 앞세워 매일유업 제품에 대해 표절 소송을 진행하는 등 유업계에서도 '쌈닭'으로 통하며 철저히 소외됐다.
게다가 창업자 일가의 부도덕도 끊임없이 '오너리스크'를 소환하는 불씨를 당겼다. 홍 전 회장은 1999년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장남 홍진석 전 상무의 군입대를 회피하려한 병역비리로 불구속 입건됐다. 2003년에는 공정 건설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서 배임수재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됐다. 이듬해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오히려 당당히 회장으로 취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눈초리를 받았다. 뒤이어 그는 남양유업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혐의가 밝혀지며 2018년 벌금 1억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자손들도 논란을 몰고다녔다. 홍 전 상무는 회삿돈으로 고가의 외제 자동차를 유용하는 등 배임 논란에 따라 보직 해임되기도 했다. 홍 전 회장의 외손주 황하나 씨는 마약 관련 이슈를 물고 다니며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다.
잇단 오너리스크에 남양유업은 내파되기 시작했다. 2013년 대리점 강매 사건 발생 당시까지만 해도 남양유업은 유업계에서도 알짜로 통했다. 1994년 이래 무려 20년 동안 흑자 행진을 이어왔으며, 2009년 첫 매출 1조 돌파 이후 고속 성장세를 유지했다. 대리점 강매 사건이 터지던 2013년 5월 당시 남양유업 주가는 주당 117만5000원으로 신고가를 갱신하고 있었다. 시가총액은 6900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해 사건이 터지며 남양유업 주가와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소비자들의 공분이 확산되면서 불매 운동이 시작됐다. 연간 영업이익은 2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안정세를 찾나 싶던 경영은 2014년 하반기 중국 사드 사태에 따른 분유 수출 급락으로 연간 적자폭을 한층 심화시켰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남양유업 실적은 연간 매출 1조원~1조1000억원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간신히 적자를 면한 데 만족해야했다. 남양유업은 최근까지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자사의 로고를 철저히 가리면서 실적을 방어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10여년 가까이 이어져온 불매운동에 실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남양유업은 여전히 재무적인 면에서 상당히 견실했다. '무차입 경영' 기조는 1999년부터 만 23년째 이어지고 있다. 재무건전성은 오너 일가가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오너 극도로 보수적인 경영 하에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최근 불가리스 사태는 홍 전 회장 일가가 회사 매각이라는 초유의 결단까지 내릴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발표가 시장에 퍼져나가면서 남양유업 주가는 급등했다. 하지만 추후 질병관리청이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부정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남양유업을 고발하고 영업 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했고 남양유업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로부터 주가 조작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받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홍 전 회장은 이달 4일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불가리스 논란에 대해 사과한 후 퇴임했다. 지배구조 쇄신 의지를 밝히며 이사회에서 모친 지송죽 이사와 홍 전 상무를 사임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경영권에 이어 소유권까지 내려놓는 오너 일가의 결단은 결국 어떤 대응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이뤄졌다. 후계자인 아들 역시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이상 3대에 접어들어서도 오너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내다본 결정이기도 하다. 사업보국으로 시작한 국민 기업 남양유업은 그렇게 불명예로 점철된 역사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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