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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다른 길 걷는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MZ세대 경영인 분석]컨설턴트·기자 다양한 경력...30대 주축 미래위원회 주도

박상희 기자공개 2021-09-15 07:40:00

[편집자주]

전체 인구의 약 33%인 MZ세대는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주요 기업 구성원의 60%가량을 차지한다. MZ세대와의 소통이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재계 총수가 3~4세로 넘어가면서 오너 경영인들도 젊어지고 있다. 총수 자제 중에는 밀레니얼 세대인 1980년대생 대표이사 사장부터 1995년생인 신입사원 Z세대까지 MZ 세대가 포진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 디지털로 무장한 MZ세대 경영인들의 행보는 과거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9월 10일 16: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중공업그룹 오너 3세인 1982년생 정기선 부사장은 한화그룹의 김동관 사장과 더불어 MZ세대 오너경영인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특기할만한 점은 정 부사장이 다른 3~4세 오너경영인들과는 달리 아버지 옆에서 가업 경영을 지켜보며 후계자 수업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오너 2세 가운데 드물게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 지위만 유지하면서 ‘소유하되 경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달리 말하면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오너 경영 체제가 본격 시작됐다는 의미다. 정 부사장이 현대중공업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이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MZ세대인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본업인 조선업에서 본인보다 앞선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인 강성 노조를 카운터파트로 상대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동시에 MZ세대를 주축으로 한 미래위원회 설립을 주도하는 등 현대중공업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2013년부터 본격 경영수업...컨설팅회사·인턴기자 등 다양한 경력

정 부사장은 대일외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학업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경영학도의 길을 걸었다. 정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 부사장은 학업을 마치고 곧바로 경영 수업을 받는 전형적인 후계자 행보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정 부사장과 절친으로 알려진 한화그룹의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전형적으로 ‘예정된’ 오너경영인의 걸은 케이스다. 1983년생인 김 부사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뒤 한국에 귀국해 병역 의무를 마치고 28살의 나이에 한화그룹에 입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면 정 부사장은 본격적인 경영 행보는 다소 늦은 편이다. 정 부사장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학군사관)로 군 복무를 마쳤다. 이후 2007년 동아일보에서 인턴 기자로서의 경험을 쌓기도 했다. 기자생활은 부친 정 이사장이 권유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기회로 삼으라는 뜻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28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지만 7개월 만에 유학 길에 올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1년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에서 2년간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후 정 부사장은 2013년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복귀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서의 커리어는 사실상 2013년부터인 셈이다. 직책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이었으나 재무와 기획, 영업,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사장은 2014년 10월 35세의 나이에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상무로 승진했다. 2015년 11월 전무, 2017년 11월 부사장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지 못한 정 부사장의 멘토로는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과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이 꼽힌다. 두 사람은 정 이사장의 복심으로 알려져 있다. 정 부사장은 경영과 관련한 행사에는 권오갑 회장과, 그룹 조선사들의 수주영업을 위한 현장에는 가삼현 사장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열렸던 국내 수소경제를 주도하는 15개 회원사로 구성된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Korea H2 Business Summit)' 출범식에는 현대중공업그룹을 대표해 정 부사장이 참석했다.

재계 친분으로는 김동관 사장을 첫손에 꼽는다. 2016년 8월 김동관 사장의 할머니인 강태영 여사가 세상을 떴을 때 정 부사장이 빈소를 찾았다. 당시 ‘어떤 인연으로 오셨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동관이랑 친구입니다”고 대답했다는 일화다.

◇미래 먹거리 발굴 브레인스토밍 조직 미래위원회 발족...30대 MZ 세대와 소통

현재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 대표,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을 겸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여기에 미래위원회도 이끌었다.

정주영 현대가(家) 창업주의 손자인 정 부사장은 아버지 세대(정몽준)를 건너뛰고 등장한 오너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해외 선주와의 네트워크를 다지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한국 조선업을 개척한 인물인 정주영 회장의 손자라는 DNA는 전문경영인과 차별화 될 수밖에 없는 포인트다. 정 부사장이 영업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이유로 풀이된다.

오너 경영인으로서 조선업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 신사업 관련 기획 전략 업무를 담당하는 경영지원실을 이끄는 것도 상식적인 수순으로 풀이된다.

정 부사장이 맡고 있는 직책 가운데 MZ세대 경영인으로서 정 부사장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미래위원회 위원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9월 미래사업을 육성하는 미래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과 바이오, AI(인공지능), 수소·에너지·건설기계 등의 사업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다만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미래위원회는 기획과 전략 업무를 담당하는 정규 조직이라기보다는 신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태스크포스(TF)팀에 가깝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 조직인 셈이다. 신사업 발굴은 미래위원회에서, 신사업 육성은 경영지원실에서 담당한다는 의미인데 정 부사장이 그 사이 가교 역할을 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정기선 부사장은 미래위원회 위원장과 기획전략재무 업무를 담당하는 경영지원실장을 겸하고 있다”면서 “미래위원회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사업적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싶으면 경영지원실로 이관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미래위원회 신설이 정 부사장 주도로 만들어졌고, 이 위원회가 30대 중심의 MZ세대에 속하는 대리 과장급 30여명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정 부사장이 조선과 정유, 건설기계 이외의 그룹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데 MZ세대와의 소통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중공업은 제조업 특성상 생산직의 비율이 높다. 전체 근로자의 64%가 생산직, 36%가 사무직(연구, 설계, 직원)이다. 그룹의 주축인 조선업의 경우 현대중공업 기준 조선소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17.5년에 달한다. 평균 연령대는 40대다. MZ세대에 속하는 정 부사장 역시 평소 역동적이면서도 세대격차를 좁힐 수 있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위원회는 소기의 성과도 달성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3월 수소 사업 비전을 담은 ‘수소 드림 2030 로드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각 계열사의 인프라와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육상과 해상에서 수소생산부터 운송, 저장, 활용에 이르는 ‘수소 밸류체인(Value Chain)’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9월 구성된 미래위원회 활동은 일차적으로 3월 종료됐다. 수소 사업 로드맵에는 미래위원회에서 구상한 아이디어가 경영지원실로 전달돼 로드맵 발표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수소 밸류체인
◇현대글로벌서비스, 경영 능력 검증 시험대...지분 승계는 '아직'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경영 능력 검증은 오너 3~4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정 부사장은 현대글로벌서비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12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물적분할 돼 설립됐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발맞춰 친환경선박 개조·유지·보수사업, 스마트선박 개발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회사 매출은 2017년 2403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9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CAGR)은 27%를 기록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출범할 당시부터 정기선의 ‘경영능력 시험대’로 불리며 관심이 높았다. 그가 친환경선박 개조사업의 성장성을 확신하고 직접 회사 설립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선박시장에서 선박의 전체 운항기간에 종합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유일하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2018년 4월 기자간담회에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이 2014년부터 강력히 주장해 세우게 된 회사”라며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부사장 주도로 설립된데다 설립 초기 매출액 상당 부분이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서 발생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내부거래 비중은 점차 감소해 2019년 기준 5%, 2020년 기준 8% 수준에 그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 38%를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지분율을 기존 100%에서 42%로 낮췄다.

지분 승계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소요된다. 정 부사장은 2018년 3월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 5.26%를 3540억 원에 매입하며 지분 26.6%를 가진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에 이어 2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당분간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마무리와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정비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오일뱅크, 현대삼호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의 IPO도 잇따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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