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1월 19일 07: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시장에는 한때 '사모투자펀드(PEF) 옵션부 투자 모범규준'이 존재했다. 당시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PEF가 투자 과정에서 각종 옵션을 부여해 사실상 확정 수익률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았다.금융당국은 출자자로서의 리스크를 거의 부담하지 않는 옵션부 투자는 사실상 대출과 다름없다고 봤다. 이 때문에 PEF는 단순한 기간의 경과를 옵션 행사 기준으로 삼을 수 없고 행사가격은 시가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교보생명보험이 기업공개(IPO) 재도전을 선언했다. 기나긴 분쟁에 끝을 맺기 위한 회심의 카드다. 차근차근 상장 절차를 밟는다면 내년 유가증권 시장 입성이 가능하다. 양쪽이 그토록 팽팽하게 맞서는 가격도 시장에서 수요예측을 통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장가치'다.
어피너티컨소시엄(어피너티, IMM PE, 베어링 PEA, GIC)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하면서 2015년까지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이 지분을 사주는 내용의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고 어피너티 측은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신 회장은 가격이 과도하다며 거부했다. 국제상업회의소(ICC)까지 다녀왔지만 갈등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그렇다면 교보생명의 시장가치는 어피너티컨소시엄의 투자 시점에 비해 올라갔을까, 아니면 떨어졌을까. 힌트는 상장한 동종업계의 다른 상장 생명보험사의 주가 추이에서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생명보험 업황은 당시보다 밝지 못하다. 2012년에 비해 현재 삼성생명의 주가는 30%, 한화생명은 50%, 동양생명은 67% 떨어졌다.
생보사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동안 교보생명의 기업가치만 홀로 눈부시게 성장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교보생명의 시장가치도 당시보다는 떨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이 2012년 교보생명에 투자할 때의 주당 가격은 24만5000원, 이후 요구한 풋옵션 행사가는 주당 40만9000원이다. 두 배에 가까운 수익률이다.
PEF의 본질은 지분 취득을 통한 경영 참여다. 옵션부 투자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풋옵션 조항의 유효성을 따지려는 건 아니다. 이미 계약은 체결됐고 ICC도 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다만 업황이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풋옵션을 근거로 1조원 넘는 수익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PEF의 본질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프라이빗 에쿼티 투자의 본질이다. 능력 있는 사모펀드라고 해서 반드시 손실을 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투자는 대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장기업의 가치는 시장이 결정한다. 회계법인도, 법원도 시장가격을 정해줄 수는 없다. 교보생명의 IPO를 응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장에 성공해 교보생명의 '진짜' 가치가 드러나면 이 긴 분쟁도 끝을 맺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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