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M&A]현대중공업그룹의 인수 의지는 '진성'이었나대우조선 대신 LNG선 사업 선택, 인수 기간 중 지배구조 개편·현대중공업 IPO 완료
유수진 기자공개 2022-01-17 14:02:10
이 기사는 2022년 01월 14일 08: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끝까지' 대우조선해양을 품고자 했을까.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조선 '빅2'의 기업결합에 퇴짜를 놓은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은 사실상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사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중 전자를 택한 셈이 됐다.현대중공업그룹은 인수 주체로 3년을 보내는 동안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 기간 시장 상황이 크게 개선돼 굳이 M&A를 하지 않아도 각자 생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현대중공업그룹, 'LNG선 사업 매각' 요구 거절
EU 집행위원회는 13일 밤 9시(현지시각 오후 1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간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심사 종료일(20일)까지 아직 일주일이 남아있으나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수차례 심사를 멈췄다 작년 11월 재개한지 두달여 만이다.
불허 이유로는 업계의 예상대로 LNG선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형성해 공정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나치게 영향력이 커져 선가 인상으로 번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현재 글로벌 LNG선 시장에서 양사의 시장 점유율은 60% 내외로 알려져있다.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았고, 동시에 설득하지도 못했다. 그간 EU 경쟁당국은 현대중공업그룹 측에 지속적으로 독과점 해소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사업 축소, 혹은 일부 매각을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은 끝까지 EU에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딜이 무산되더라도 LNG선 사업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한 것이다. 그렇게 양 측은 수차례 의견을 주고 받고도 끝내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부가 선박인 LNG선은 수익성이 좋고 친환경 추세와 맞물려 발주가 늘고 있어 성장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알짜'인 셈이다. 특히 국내 조선 3사는 지난해 전세계 발주량(78척)의 87%(68척)를 휩쓰는 등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선 쉽게 내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EU의 승인을 받으려면 LNG선 시장에서 어느정도 발을 빼야 하는데 그보단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주체'로서 3년,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
초기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재계와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딜이 어그러지더라도 현대중공업그룹은 딱히 아쉬울 게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한 '3년의 시간'을 그냥 헛되이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 기간 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을 완료했다. 오너일가가 지배하는 현대중공업지주 아래 조선부문 중간지주인 한국조선해양을 세우고 그 아래 네개의 조선사를 자회사로 두는 구조를 짰다.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형태다.
현재 '마지막 퍼즐'인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하곤 계획대로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한국조선해양 밑에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이 나란히 놓여있다. 작년 9월 현대중공업 기업공개(IPO)까지 마쳤다. 바로 다음달 정 사장이 승진과 함께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3세 경영'이 본격화했다.
◇증자 철회로 1.5조 확보, 신사업·친환경 투자 활용 가능
앞서 증권업계에서도 비슷한 시각이 나왔다. 딜이 무산되더라도 현대중공업그룹이 받는 충격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근거로는 대우조선해양에 수혈하려던 자금을 재무구조 개선이나 신사업, 친환경 투자 등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EU가 미승인할 경우 대우조선해양으로의 1조5000억원 증자 계획이 철회돼 여유자금을 고스란히 확보하게 된다"며 "한국조선해양엔 악재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3년 전 본계약 때부터 무산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엔 강력히 원했지만 딜 진행 과정에서 사업 경쟁력의 훼손이 불가피해지면서 인수를 최우선 순위에 둘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본계약 당시보다 개선된 시장 상황도 M&A가 최선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는 데 보탬이 됐을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3년 전엔 조선사들간 출혈경쟁이 이어지며 산은을 중심으로 딜이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며 "잇단 수주로 자생력이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 3년 전 상황을 잊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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