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물 회사채' 꺼낸 한전의 비애 [한국전력 5조 어닝 쇼크]⑤한전채 과잉 공급, 상환 압박 심화로 초장기물 등장···추가 발행 가능성도
양도웅 기자공개 2022-04-20 07:44:38
[편집자주]
'전력 공룡'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이 자그마치 5조2200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대기업이 이익으로 내기 힘든 숫자를 손실로 냈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전력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답은 '전기 요금 현실화'이지만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뜨뜻미지근한 모양새다.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과 비용을 대신 짊어진 한전을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4월 07일 09:00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의 자금 확보 수단은 크게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으로 나뉜다. 자기자본에는 영업활동을 통한 이익잉여금 창출과 주주들의 유상증자, 타인자본에는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 등이 대표적 사례다. 재무구조 측면에서 이상적인 자금 확보 수단은 이익잉여금 창출과 유증 등 자기자본이다. 부채비율, 차입금의존도 등 재무구조 안정성을 악화시키지 않는다.하지만 자기자본을 통한 자금 확보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기업에 타인자본을 통한 자금 확보는 불가피하다. 바로 지난해 5조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한, 그럼에도 출자에는 관심 없는 최대주주(정부와 KDB산업은행)를 둔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10조원 넘는 회사채 발행으로 한전의 부채비율은 223%로 최근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 한전채 순발행액, 올 4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규모 육박
더벨플러스에 따르면 한전은 2021년 10조4300억원 규모의 한국전력채권(한전 발행 회사채로 특수채 일종)을 발행했다. 2020년 발행금액인 3조4200원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규모이자 더벨플러스에 확인 가능한 기간 가운데 최대 규모다. 만기 도래한 한전채를 상환하기 위해 발행한 규모를 제외한 순발행액도 지난해 6조12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는 자기자본을 통한 자금 확보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회사 순손실은 연결기준 5조2292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였다. 필수 설비투자금(CAPEX)을 제외한 잉여현금흐름도 마이너스(-) 9조1206억원이었다. 사업으로 확보한 여유 현금이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실제 한전의 이익잉여금은 51조원에서 45조원으로 줄었다. 여기에 더해 최대주주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회사채 발행은 부득이했다.
올해도 역대급 규모의 한전채 발행 랠리는 계속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 초까지 발행한 한전채 규모는 7조190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발행 규모의 절반을 상회했다. 순발행액은 5조6100억원으로 지난해 순발행액과 큰 차이가 없다.
만 4개월도 되지 않아 올해 한전채 순발행액이 지난해 순발행액의 90% 이상을 웃돌게 된 건 한전의 올해 자기자본을 통한 자금 조달 상황이 지난해보다 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전기 구입단가(원가)는 kWh당 138.3원, 판매단가는 114.8원이었다.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원가는 kWh당 125.3원, 판매단가는 115.8원이었다.
원가보다 싼 값에 전기를 판매하는 상황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동일하다. 하지만 그 차이는 kWh당 9.5원에서 23.5원으로 커졌다. 전기를 팔수록 적자인 점은 같지만 적자 규모는 더 증가하는 여건인 셈이다. 시장에선 원자재 가격 급등에 맞는 전기요금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전의 올해 순손실은 최소 10조원 이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대주주인 정부와 산은이 전기요금 현실화와 출자를 모두 꺼리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한전은 타인자본을 통한 자금 조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 보증으로 신용등급이 'AAA'인 한전채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은행 대출도 하나의 방편이지만 일반적으로 회사채 발행이 협상력 측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 이자비용 절감에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 유동비율 역대 최저치···2023년부터 한전채 상환 압박 거세진다
다만 예년보다 수배 큰 규모의 한전채를 발행하면서 채권시장에 AAA급인 한전채가 과잉 공급되자 과거와 같은 투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채나 다름없는 AAA급 한전채도 수요와 공급 원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실제 한전채 금리는 동일 등급 특수채보다 높다. 한전이 주로 발행하는 5년물 기준으로 차이는 24bp다.
이는 지난달 28일 한전이 사상 처음으로 만기 30년 회사채를 1300억원 규모로 발행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계속된 5년물 이하 한전채 발행으로 이자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금리 상승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만기를 최대한 늘리면서 이자비용 부담을 더 먼 미래로 이전하는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현재 상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점도 초장기물을 꺼낸 이유로 분석된다. 당장 지난해 말 회사의 유동비율은 69.5%로 최근 10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1년 내 만기 도래하는 부채가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약 1.4배 크다는 의미다. 이미 자기자본을 통한 자금 확보가 어려운 처지에 부채를 부채로 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전채 만기 도래 규모는 내년부터 급증한다. 올해 하반기 만기 도래 규모는 2조7400억원인데 반해 2023년 4조9600억원, 2024년 5조2500억원, 2025년도 5조2500억원이다. 차환용 회사채 발행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금리 상승 국면인 까닭에 이자비용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
이는 전기요금 현실화에 따른 흑자 전환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만치 않은 결정이다. 올해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동결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전기요금 현실화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 한전이 이자비용 부담을 이전시키기 위해 '또' 초장기물 회사채를 꺼낼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한전이 차입금을 늘리면서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며 "다만 정부가 이를 계속 방치하고 있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신용등급 조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초장기물 회사채를 발행해도 시장에서 소화가 된다면 여전히 시장 신뢰도는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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