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7월 07일 14: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바라봤다. 미국 월가(월스트리트)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니치마켓(틈새시장)에 먼저 파고든 뒤 100조원 규모의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벨리온의 신경처리망장치(NPU)는 지금 세계 어디에 내놔도 기술 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이 '제2의 엔비디아'라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추동력이다. 박 대표는 "미국의 넷플릭스나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데이터센터 지을 때 삼성전자에서 메모리를, 리벨리온에서 인공지능(AI) 칩을 사오도록 만드는 것이 리벨리온이 그리는 미래"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로의 변화를 노리는 KT가 300억원을 지원하며 투자사이자 고객사로 리벨리온에 손을 내밀었다. 리벨리온으로서는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국내 대표 데이터센터 기업 KT와의 협력은 글로벌 진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박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박 대표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큰 시스템 반도체는 국가의 차세대 먹거리인 만큼 지금 도약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며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역사에 큰 줄을 긋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첫 NPU 브랜드 '아이온', 월스트리트 중심에 서다

리벨리온이 처음 시장에 선보이는 NPU 브랜드는 금융용 AI 반도체 '아이온(ION)'이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TSMC가 미세 공정인 7나노미터(㎚·1㎚=10억분의 1m)로 위탁생산을 맡을 정도로 첨단 반도체다. 시제품 생산까지 마친 상태로 내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 업체를 고객사로 이미 확보했다.

아이온은 한국과 달리 거래소가 여러 개라 고빈도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가 가능한 미국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만든 반도체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보낸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뒤 현물 시장의 흐름을 예측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주문까지 직접 넣는 AI 연산을 수행한다. 아이온은 0.000001초 단위로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는 HFT 연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도록 설계됐다

많은 산업 분야 중에서도 왜 첫 제품으로 금융에 특화된 AI 칩을 내놨을까. 박 대표는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려면 데이터가 많아야 하는데 금융은 얼마에 사고, 파는지 숫자가 깔끔하게 정리되고 사람의 편견이 들어가지 않는 거의 유일한 분야"이라며 "또 틀려도 리스크가 크지 않은 영역"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NPU라면 100% 다 맞지 않을 경우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 하지만 주식 거래에선 AI가 100번 중 55번만 정확히 예측해도 수익을 낼 수 있다. 아이온에서 습득한 NPU 알고리즘은 향후 정확성이 더 중요한 다른 NPU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KT와의 전략적 협업 가동 '글로벌 진출' 가능성 키웠다

그다음은 서버용 '아톰(ATOM)'과 '리벨(REBELL)'로 서버 시장을 공략한다는 게 리벨리온의 큰 그림이다. 아톰은 클라우드나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서버용 AI 칩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5나노 공정으로 2024년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톰 양산 시점에 아톰보다 진화한 초거대 모델(규모가 확장된 AI) 리벨 프로젝트를 가동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KT와의 협업 방점은 앞으로 커질 NPU 시대를 함께 개척해나가는 데 의기투합한다는 데 찍혀있다. 이는 국가의 AI 반도체 생태계 강화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행보다.

리벨리온은 앞으로 아톰을 KT가 구축하는 데이터센터의 구조와 규격에 맞는 맞춤형 NPU 형태로 만들어 공급하게 된다. 국내 대표 통신기업 KT에 NPU를 공급해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글로벌 진출이 보다 유리해진다.

박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레퍼런스를 가진 NPU 회사는 거의 없다. 국내 1위 데이터센터 KT의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남들보다 적어도 반 발짝 빠르게 해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KT의 주문도 (KT와의 거래 관계를 발판으로) 로컬에 안주하지 말고 글로벌 무대로 나가 세계적인 팹리스가 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주요 데이터센터에서 AI 기능을 수행하는 건 NPU가 아닌 엔비디아의 GPU 제품이다. 그러나 NPU가 GPU를 대체하면 전력 소모가 줄고 데이터 처리 용량과 속도가 대폭 개선된다. 데이터센터 기업 입장에선 고품질의 AI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박 대표는 "NPU가 GPU보다 에너지 효율이 3배는 좋아 운영 비용이 크게 떨어진다"이라며 "KT는 리벨리온에 중요한 고객사이자 글로벌 진출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라고 덧붙였다.